최근 미국 경제의 ‘노 랜딩(no landing)’ 시나리오는 미 금리를 추종할 수밖에 없는 한국 처지에서 예사롭지 않은 경기 전망이다. 노 랜딩은 지난해 12월 JP모간 보고서에서 언급됐는데, 그제는 중앙은행(Fed) 구성원인 애틀랜타연방은행 총재까지 언론 인터뷰에서 거론했다. 요약하면, 그동안 우려한 경기 둔화는 없지만 인플레이션 걱정이 여전해 Fed가 긴축 기조를 접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연착륙(soft landing)이냐, 경착륙(hard landing)이냐는 그간의 통상적 전망과 다른 제3의 길로 들어선다는 분석이다.

노 랜딩에서 보면 새로운 양상의 미국 경제는 경기 둔화가 아닌 만큼 당장은 금리 인하도 없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측된다. 경기 낙관의 근거는 물가보다 더 오른 최근 두 달의 실질임금 상승률, 시장 전망치를 크게 웃돈 신규 고용과 50여 년 만에 가장 낮은 실업률 등이다. 제롬 파월 Fed 의장도 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을 계속 내비치고 있다. 미국의 금융·경제가 여전히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현실에서 그쪽 금융과 정책당국 움직임을 그 어느 때보다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경제가 노 랜딩이나 그와 유사한 제3의 길로 가면 우리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에 침체가 없다고 한국 경제까지 회복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당장 환율만 봐도 그제까지 3거래일 새 달러당 35원이나 급등했다. 무역적자 등 현실을 감안해도 과도하다. 기업 실적 악화, 약해진 내수, 건전 재정에 대한 의구심, 첨단 산업에서의 경쟁력 저하, 떨어지는 잠재성장력 등 ‘펀더멘털’에 대한 국내외 평가와 미래 전망이 환율에 종합적으로 반영된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아울러 중국 위안화와 동조 현상을 보이던 원화 가치가 최근에는 초저금리를 고수하는 일본 엔화와 비슷하게 움직이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한국은행이 부작용을 감내하며 기준금리를 올리는데도 원화만 왕따처럼 유별난 약세라면 이 역시 펀더멘털의 이상에 다름 아니라고 봐야 한다.

어떻든 미국 금리 향방이 눈앞의 관심사다. 환율과 인플레이션을 의식하며 한은은 힘겹게 금리를 올려왔고, 금융감독 당국은 가계·기업을 의식해 관치 비난을 무릅쓰며 대출금리 상승을 막는 상황이니 거시정책도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구나 악화일로인 무역수지를 보면 원화 가치는 더 떨어질 공산이 없지 않다. 이전 같으면 환율 상승이 수출 증대로 이어진다지만, 미국과 중국의 장기 대치 속에 진행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와중에는 그런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고공행진하는 에너지·식량 자원의 수입가격 부담만 키우고 있다. 경상수지도 어제 발표된 지난해 12월 통계는 배당 덕에 가까스로 흑자 전환했지만 올 한 해 전체로 보면 매우 어둡다.

미국이 노 랜딩이든 침체 국면 재진입이든 우리는 경제 기초체력을 키우면서 회복 탄력성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정부부터 윤석열 대통령이 세종청사에서 강조한 대로 공무원의 일하는 방식 혁신 등 공공개혁을 기존 3대 개혁과제(노동·연금·교육)에 추가해 성과를 내야 한다. 여당도 좀스러운 당권 다툼에서 벗어나 정부와 함께 규제혁파를 밀어붙여 기업이 생산성 혁신에 나설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구조개혁을 통한 잠재성장력 살리기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다.

내년 총선을 의식한 여야의 이른 포퓰리즘 경쟁이 경제 이슈까지 다 삼키는 블랙홀이 될까 걱정이다. 연료비 지원 논란 등을 보면 건전 재정을 지지해야 할 여당까지 가세할 정도로 퇴행의 여의도 정치는 경제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배터리 등 글로벌 대기업의 초대형 투자를 다 끌어들이는데 한국의 반도체특별법은 용두사미가 됐고 거대 야당은 과격한 귀족 노조와 결탁해 노란봉투법이나 만들겠다고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다 높게 보면서 한국(1.7%)만 내려 잡는데도 우리 경제의 추락이 두렵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