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캐논과 니콘의 흥망史
1, 2차 세계대전에서 포 사격이나 전투기 폭격 시 조준경의 선명도는 게임 체인저 중 하나였다. 양대 전쟁을 주도한 독일은 광학산업에 일찍 눈을 떠 라이카, 칼 자이스, 슈나이더 등 렌즈 기업들을 키웠다.

독일을 벤치마킹한 일본은 1917년 군수 기업 미쓰비시 계열로 ‘일본광학공업주식회사’를 만들었다. 후일 ‘일본광학’의 일본어 발음인 ‘니폰 고가쿠(Nippon Kogaku)’의 줄임말 ‘니콘(Nikon)’으로 사명을 바꿨다. 캐논은 니콘보다 16년 늦은 1933년 출발했다. 독실한 불교도인 창업자가 카메라에 ‘관음(觀音)’이란 이름을 붙였는데, 이를 일본어로 읽으면 ‘콰논(Kwanon)’이다. 여기에서 캐논(Canon)이란 브랜드가 나왔다.

독일 라이카 베끼기에 급급했던 일본 카메라가 전기를 잡은 것은 6·25전쟁 때였다. 북한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 독일제 카메라들이 속속 품질 문제를 드러낸 데 비해 일본 카메라는 끄떡없이 전장의 모습을 기록해 나갔다. 그 선봉에 선 것이 니콘이었다. 니콘은 1950년대 후반 ‘니콘 F’ 출시 이후 ‘신뢰의 니콘’을 쌓아가면서 일본은 물론 전 세계를 장악해 갔다.

자본과 기술력 모두 한참 후발주자인 캐논은 ‘타도 니콘’만 생각한 회사였다. 니콘은 8년마다 새 제품을 내놓았는데 캐논은 그 주기를 2~3년으로 줄였다. 니콘이 렌즈 기술에만 천착한 데 비해 캐논은 카메라 본체에 유선형 디자인을 처음 도입하고, 도전적 광고문구와 언론 취재진 지원 등 마케팅에서도 칼을 갈았다. 돈이 되면 무조건 한다는 사업 다각화도 니콘 추월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2002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역전에 성공한 캐논은 20년째 카메라 세계 1위를 지키고 있고, 니콘은 이제 소니에도 밀려 3위로 처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얼마 전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자신을 촬영한 취재진의 카메라를 보고 “모두 캐논이네” 한 게 화제가 됐다. 물론 이 회장의 말은 묵은 팩트지만, 재밌는 것은 카메라의 피사체가 자신을 찍고 있는 세상을 차분히 바라봤다는 점이다. 거기엔 냉정한 진리가 있다. “졸면 죽는다.” 와신상담 끝에 니콘을 제친 캐논은 이제 소니의 맹추격을 받는 중이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