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길곤의 데이터로 본 정책] 데이터로 본 코로나 3년, 그리고 미래를 위한 교훈
벌써 3년의 세월이 흘렀다. 우리는 코로나19의 공포를 경험했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코로나19를 기억하고 있다. 시간이 더 흐르면 이런 기억 중 합리화하고자 하는 기억만 남고 나머지는 망각의 강에 던져질 것이다. 우리의 코로나19에 대한 기억이 취약한 것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간단한 질문을 던져보자. 코로나19의 공포가 가장 심했던 2020년 한국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는 몇 명이나 될까? 정답은 900명이다. 당시 결핵 사망자는 1356명이었다. 사람의 생명 하나하나가 소중하므로 숫자로 판단하기는 힘들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수는 우리 기억 속의 공포보다는 훨씬 적다. 객관적 데이터로 우리의 기억을 다시 반추해보는 시간을 갖지 않으면 사회 전체가 집단적 기억 왜곡에 빠져 제대로 된 교훈을 얻지 못할 위험이 크다. 필자가 <데이터로 바라본 코로나 세상>(고길곤·홍민준 저, 문우사)을 출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되던 2020년 2월로 돌아가 보자. 당시 중국발 입국자를 봉쇄하지 않았기 때문에, 코로나19가 확산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중국에서 유래된 감염병이므로 당연히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을 봉쇄하면 코로나19가 확산하지 않을 것이라는 상식적인 주장이다. 하지만 대구 지역의 코로나19 확산이 발생하기 이전인 2020년 2월 18일까지 총 31명의 확진자 중 중국인 확진자는 6명에 불과했다. 초기에 완벽한 이동 통제를 해야 국경봉쇄 효과가 있지만, 감염병의 심각성이 인식되는 순간 이미 다양한 경로로 전파가 됐기 때문에 국경봉쇄 효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은 경우가 많다. 유럽조차도 자유로운 국경이동을 보장한 솅겐협정 효력을 잠시 중지시키고 2020년 3월 18일 30일간의 국경봉쇄를 선언했지만, 코로나 확산을 막을 수는 없었으며 국경봉쇄 기간이 길어질수록 확진자가 줄었다는 통계적 근거도 없다. 국경봉쇄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던 것이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선진국들이 여러 차례 도시봉쇄를 선언해 식품과 의약품 등 필수 구매 활동과 일부 긴급한 활동을 제외한 모든 외출을 금지했지만, 한국은 도시봉쇄를 선언하지 않았다. 그 결과 구글의 코로나19 지역사회 이동성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영국 일본 미국 독일 등의 선진국은 평상시 이동성보다 50% 이상 감소한 경우가 많았지만, 한국의 이동성은 지난 3년간 30% 이상 감소한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한국이 일상을 유지하면서 자율방역이 가능했던 것은 의료서비스가 체계적으로 공급됐고, 시민들의 마스크 착용률과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 순응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백신 부작용 때문에 한국에서도 백신 접종률이 낮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백신 접종이 시작되자 매우 빠른 속도록 백신을 접종받아 2021년 12월에 이르자 18세 이상 접종 대상자의 90% 이상이 2차 접종까지 완료했다.
 그래픽=신택수 기자
그래픽=신택수 기자

韓, 100만 명당 코로나 사망자 수 獨 3분의 1

[고길곤의 데이터로 본 정책] 데이터로 본 코로나 3년, 그리고 미래를 위한 교훈
한국의 성공적인 코로나 대응은 인상적이다. 2023년 1월 22일 현재 한국의 100만 명당 코로나 사망자 수는 647명으로 독일의 3분의 1, 이탈리아의 5분의 1 정도이며, 성공적인 방역 국가로 알려진 대만과 뉴질랜드와 비슷한 수준이다. 지니계수로 측정한 소득불평등 지수도 2019년 0.339에서 2021년 0.333 수준을 유지했다. 청년실업률도 같은 기간 동안 1.1%포인트 하락했다. 경제적 충격을 보면 2021년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19년 대비 3.45% 증가했으나 영국과 일본은 각각 5.93%와 2.19% 감소했다. 이런 한국의 경제 대응은 한국의 제조업 경쟁력과도 관련이 있다. 실제로 2019년 기준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7.5%로 영국의 8.7%에 비해 월등히 높다. 이런 제조업 기반은 한국이 신속하게 코로나19 검사키트, 마스크 등을 생산하고 글로벌 공급망 위기에 적극 대응할 수 있게 했다.

물론 사회 전반에 코로나19가 초래한 부정적인 효과도 크다. 한국의 출생 건수는 2019년 대비 2021년 13.91%나 감소했고, 혼인 건수도 19.51% 감소했다. 우울증도 2019년 대비 2021년 약 15% 증가했다. 이런 변화는 코로나 이전에도 지속된 추세였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상황 개선이 더욱 어렵게 된 것이다. 또 온라인 수업으로 인해 고교 2학년생의 수학과 영어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도 2019년 대비 2021년 각각 5.2%포인트, 6.2%포인트 높아졌다. 청년은 인적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인적 자본 축적의 기회를 잃게 됐다. 코로나 기간 동안 요양병원에 있는 노인들은 가족은 물론 사회와 고립된 채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으며 전례없는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으로 우리의 삶은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자유의 제약을 경험했다.

수많은 생명과 건강의 위협 그리고 사회·경제적 위험을 초래한 코로나19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첫째, 연결된 사회에서의 위험 공유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베크는 위험사회는 ‘위험한 사회’가 아니라 ‘위험이 중심이 된 사회’라고 이야기하면서, 위험사회는 위험의 전염성이 강하며 그 위험이 사회의 한 부분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부분으로 연결되며, 전 지구적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연결된 사회에서는 이 위험사회의 특징이 현저하게 나타난다.

만일 중국이 개방 이전 시대처럼 고립된 나라였다면 코로나19가 팬데믹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루에도 수백만 명이 직장에서, 학교에서, 음식점에서 모이지 않아도 된다면 위험의 확산은 더뎠을 것이다. 하지만 21세기는 초연결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코로나19의 공포는 인터넷, 무역, 교통, 통신 등 다양한 연결망으로 전파됐고 결국 코로나19의 위험이 우리 사회의 중심이 돼버린 것이다.

위험 공유하며 함께 극복하는 연결된 사회 돼야

이런 위험사회의 해결책은 연결망을 파괴하는 것이 돼서는 안 된다. 우리 스스로를 연결망에서 고립시키는 순간 인류가 이뤄낸 초연결사회의 수많은 혜택을 포기해야 하고 이것은 사회의 퇴보를 초래할 뿐이다. 우리는 오히려 반대의 길을 가야 한다. 연결된 사회에서는 위험을 공유하면서 그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자신을 집에 고립시키기보다는 타인과 소통하며 해결책을 찾아가야 하고,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함께 공감하고 경제위기를 해결해야 하고, 청년 세대의 어려움을 장년 세대가 이해해야 한다. 다중이용시설 집합금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허용한 범위 내에서 사회적 모임을 유지하는 것도 위험 공유를 통한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런 점에서 물리적 거리두기와 ‘사회적’ 거리두기는 엄격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둘째, 시민 신뢰의 중요성을 재발견해야 한다. 코로나 이후 세상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너무도 연결돼 있어서 특정 사회 집단이나 정부가 혼자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중국처럼 안면인식, 위치정보 등 다양한 기술을 이용해 국가가 방역을 이유로 시민의 일상을 강력히 통제하는 모형보다는 한국처럼 정확한 정보공개, 정부와 전문가의 협력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자유민주주의 모델이 더 우월함을 우리는 배웠다. 정부가 시민을 신뢰할 때 자가격리도 가능했고,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도 가능했다. 정부가 투명하게 위중증 환자 수, 가용 병상 수, 마스크 공급 현황, 백신 및 치료제 현황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을 때 시민은 정부를 신뢰하고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을 준수했다.

셋째, 과학과 근거에 기반한 정책과 시민과의 소통이다. 2022년 2월 오미크론 변이가 크게 확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 완화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오미크론 변이의 치명률과 중증화율이 낮다는 과학적 근거와 의료시설의 대응력 수준을 바탕으로 정부가 결단을 내린 것이다. 과학적 근거는 잘못된 상식과 편견을 극복하게 한다. 예를 들어 발열검사기를 다중집합시설에 설치했으나 그것이 효과적이었는지는 체계적인 사후평가를 통해 알 수 있다. 실제로 제주공항에서는 발열자의 코로나 검사 의무를 2020년 3월 도입한 이후 2022년 3월 이를 폐지하기까지 2만1281명의 발열자를 감지했는데 이 중 0.3%만이 확진자로 판정됐을 뿐이다.

[고길곤의 데이터로 본 정책] 데이터로 본 코로나 3년, 그리고 미래를 위한 교훈
넷째, 코로나 이후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코로나 대응정책에 대한 평가 과정이 필요하다. 2020년부터 2022년 10월까지 경기침체와 이자율 상승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가계, 기업, 신용카드 대출 연체율은 계속 낮아져서 코로나 이전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정부가 원금 상환 및 이자납부를 유예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통계상으로는 건전해 보여도 대출의 건전성 파악이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는 부채 연장과 부채 탕감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정책은 부담은 국민 전체가 나눠 지고 혜택은 소수에게 집중되기 때문에 조직화한 소수를 위한 정책이 되고 만다. 또한 실질적으로 휴업이나 폐업 상태에 있는 기업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 재난지원금이 제대로 쓰이는지를 알 수 있지만, 이것도 파악이 쉽지 않다. 2022년만 해도 2차에 걸친 코로나 추가경정예산이 79조원이나 지출됐는데 이 예산을 300만 소상공인에게 제공했다면 2600만원씩 지급할 수 있는 규모다. 이 추경예산의 필요성과 효과를 과학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책임은 정부와 국회에 있다.

규제·자본 부족으로 혁신 의지 꺾여선 안돼

마지막으로 코로나가 초래한 혁신의 큰 흐름을 우리는 역행해서는 안 된다. 세계 각국은 위치추적, 재택근무, 원격의료, 물류, 로봇화, 공공 데이터의 공유와 업무의 클라우드 전환 등 다양한 디지털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세계 코로나 통계를 제공한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코로나 상황판 플랫폼도 처음에는 대학교수 한 명과 박사과정 조교가 만든 것을 대학, 기업, 비영리 단체가 지원하면서 세계적인 데이터플랫폼이 된 것이다. 기술이 있어도 규제나 자본이 부족해 혁신 의지가 꺾여서는 안 된다. 만일 우리 사회의 제도가 새로운 혁신 노력을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미래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원격의료는 코로나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허용됐지만, 의료계의 반발로 그 확대 가능성이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 기업들은 투자를 주저하고 있다. 정부기관 간의 데이터 공유 노력과 클라우드 전환 속도도 느리다.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코로나 이후의 세상에서 사회·기술 혁신이 절실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100만 명이 넘은 날 미국 정부기관에 조기를 게양토록 하면서 ‘치유하려면 기억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코로나의 공포를 넘어 시민의 역량을 신뢰하며 정부와 시민이 함께 위기를 극복해나간 기억을 소중히 할 때 우리는 더 의미 있는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 고길곤은

사회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행정과 정책의 논리를 탐구하고 분석하는 행정학자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 싱가포르국립대 조교수로 근무했다. 현재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아시안저널오브폴리티컬사이언스 편집장이다. 인사혁신처 정책자문위원, 국민경제자문위원, 일상회복지원위원회 위원 등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정책분석과 평가 및 계량 방법론 관련 연구를 하고 있으며 <데이터로 바라본 코로나 세상>, <싱가포르 다시보기> 외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냈다. 공공투자 분석, 디지털 전환, 국가통계 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