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대통령은 "공무원 갑질 고발하라"지만…기업현장에선 '글쎄'
“대통령은 무섭지 않습니다. 일선 공무원이 훨씬 겁나죠.”

‘산으로 가는 규제개혁’이라는 시리즈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규제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오히려 규제가 늘고, 공무원이 할 일을 기업에 떠넘기고, 개선 요구는 관료주의 벽에 막혀 어디론가 사라지고, 도저히 지킬 수 없는 규제를 빌미로 과징금을 부과하고, 규제 담당 공무원만 늘리는 등 ‘기가 막히는’ 현상을 전하고 있다.

현장을 취재하다 보면 공통된 반응을 접한다. 취재에 응한 기업인들은 모두 관청이나 공무원으로부터 걸려 오는 갑작스러운 전화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법을 철저히 지켰지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단속이 나오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식품, 환경, 노동, 안전 관련 규제는 아무리 철두철미하게 지켜도 공무원들이 작정하고 흠을 잡으면 ‘불법자’ 낙인을 피할 수 없어서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지방 고위 공무원이 연차를 냈다는 소식이 들리면 다른 일 제쳐두고 급히 골프장 예약부터 알아본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한 피혁업체 대표는 “민원을 방지하고자 냄새를 제거하는 최신 악취 포집 설비를 설치했지만, 담당 공무원이 ‘정말 완벽하게 방지한다고 자신할 수 있느냐’고 따지듯 물으면 어느새 죄인이 돼 있다”고 한탄했다.

문제는 ‘공무원 갑질’ 사례가 중앙정부의 감시 행정력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지방과 영세업체에 몰려 있다는 것이다. 인허가 승인이나 낙찰자 선정을 조건으로 금품·향응 수수 요구, 특정 업체와의 하도급 계약 강요, 취업 청탁 등을 하는 것은 역사책 속으로 사라진 장면이 아니라 현재진행형 문제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해 기업인과 만난 자리에서 “저는 대한민국 영업사원”이라고 말했다. “공무원의 갑질이 있으면 제게 전화해달라. 용산(대통령실)에서 즉각 조치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의 확언에도 개악(改惡)만 거듭한 규제 정책을 보면서 대통령의 다짐이 또 공언(空言)이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을 피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