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M 리포트] 투자, '운' 대신 '자산 배분'을 주목해라
지난해 자산 시장은 주식과 채권의 동반 약세로 요약할 수 있다. 지난해 1월 4일을 고점으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19.9%가 내렸고, 미국 국채 가격은 38년래 가장 긴 약세장을 이어갔다. 인플레이션은 40년래 최고치까지 치솟았고,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해 기준금리를 무려 4.25%포인트 인상하는 고강도 긴축을 단행했다.

훌륭한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거듭나는 듯 보였던 FAANG(페이스북·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 주식의 몰락도 충격적이었다. 미국 대형 기술주에 대한 투자 비중이 높은 국내 투자자들의 체감 손실이 더욱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환경에서 60%를 미국 주식에 투자하고 40%를 미 국채에 투자하는 전통적인 포트폴리오도 고전할 수밖에 없다. 주가가 하락하는 시기에 채권이 강해지고, 반대로 주가가 상승할 때 채권이 약세를 보이며 보완관계를 유지했던 포트폴리오의 효과가 무색해진 것이다.

포트폴리오 효과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투자에서 ‘운’이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 알아본다면, 지난해 부진한 성과를 경험했던 투자자들은 운이 나빴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실력이 부족했던 것일까. 명확하게 ‘운’과 ‘실력’의 비중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운’에 의해 투자 성과가 크게 좌우되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스포츠를 예로 들어보면 혼자 실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 육상보다는 야구, 축구와 같이 여러 선수가 상호 작용을 하는 스포츠에서 운이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투수가 아무리 공을 잘 던져도 동료 선수가 잘 받아주지 못하면 팀은 패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WM 리포트] 투자, '운' 대신 '자산 배분'을 주목해라
시장 불확실성 커질수록 자산 배분 투자 중요

투자도 이와 비슷하다. 투자자가 철저한 거시경제 분석과 기업 가치 평가를 통해 금융 시장에 참여한다고 하더라도, 분석(실력)이 반드시 뛰어난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분석 당시에는 예상할 수 없었던 불확실성(운)이 결국 투자 성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분석가라 할지라도 코로나19 팬데믹 발발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미리 예상하고 포지션을 변경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일은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재벌집 막내 아들>에서나 볼 법한 일이다.

불확실성의 세상에서 결과를 미리 알고 투자할 수는 없지만 그 과정을 컨트롤할 수는 있다. 비교적 명확한 사실과 확률 높은 전망에 근거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한편, 정기적인 포트폴리오 점검을 통해 시장 변화에 대응하는 ‘투자 과정’을 명심하고 항상 실천하는 것이다.

특히 장기적으로 자산을 축적하고 관리하려는 투자자라면 적절한 자산 배분과 일관된 포트폴리오 재조정(리밸런싱)을 통해 원하는 성과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투자 성향에 맞는 자산 배분 포트폴리오는 단기적으로 시장 변동성이 높아지는 국면에서도 투자자가 심리적인 편향에 빠지지 않고 투자 원칙을 지킬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이는 포트폴리오 성과가 ‘운(불확실성)’에 과도하게 좌우되지 않도록 해준다.

주식과 채권 ‘60대40’ 포트폴리오 성과 주목해야

지난해 주식과 채권의 동반 부진으로 60대40 포트폴리오 투자자들은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불확실성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투자자들에게 잠재적인 수익의 기회를 주기도 한다.

지난해 주식과 채권 가격이 크게 하락함에 따라 기대수익률이 과거보다 높아졌기 때문이다. 저점에서 진입해 고점에서 팔기는 어렵지만 큰 리스크를 감내하지 않고도 주식과 채권 비중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자산 배분 포트폴리오를 새롭게 구축하는 전략을 고려할 수 있다. 다양한 자산 가운데에서도 채권이 지닌 가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수 Fed 위원들이 물가 안정의 신호가 확인될 때까지 높은 금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지만 적어도 올해에는 지난해와 같은 급진적인 기준금리 인상이 단행될 가능성은 낮다. 또한 긴축의 여파는 경기 악화 우려로 이어져 금리 하방 압력을 높임으로써 채권 투자 성과에 기여할 것이다.

물가 상승률이 수개월째 전년보다 낮아지고 있다는 점 역시 채권 투자 매력을 높이고 있다. 긴축의 여파가 시차를 두고 실물경제와 기업 이익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서 주식에 대해서는 보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다만, 현재 주가 수준은 일부 감익 가능성까지도 반영한 것으로 보이는 데다 주가의 저점을 정확히 맞춰 진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주식에 대한 투자 비중도 일부 유지해야 한다. 또한 지난해 하반기부터 주식과 채권의 역의 상관관계도 점차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만큼 포트폴리오 효과도 점차 정상화될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통제할 수 없는 운과 불확실성 속에서 투자 종목과 시점 선정에 애쓰기보다는 자산 배분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과정에 집중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우수한 투자 성과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투자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글 최보경 SC제일은행 투자전략상품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