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새벽 만원 버스
서울의 대중교통은 편리성 면에서 세계적이다. 인터넷 포털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길찾기를 요청하면 버스, 지하철, 마을버스까지 연계한 최적의 교통편과 소요 시간을 분 단위로 알려준다. 서울의 시내버스는 370여 개 노선, 7000여 대. 지하철, 마을버스와 연계해 시내 곳곳을 거미줄처럼 연결한다. 도로가 도시의 혈관이라면 버스, 지하철은 혈액이다. 특히 간선·지선 버스는 지하철이 닿지 않는 도시의 구석구석까지 승객을 실어 나른다. 그 덕에 도시가 유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벽 4시께 출발하는 첫차부터 승객으로 넘쳐나는 버스들이 있다. 지하철 첫차가 운행하는 새벽 5시 이전에 노원·도봉·강북·중랑·구로구 등 서울 변두리를 출발해 강북 도심과 강남 등으로 향하는 차들이다. 승객은 대부분 도심 빌딩에서 청소, 경비 등을 맡은 50~60대 노동자들. 서울 상계동 7단지 영업소를 새벽 4시5분에 출발해 강남역으로 향하는 146번 버스는 ‘새벽 만원버스’로 유명하다. 여러 해 이용하는 이들이 많아 승객끼리 안부 인사를 나눌 정도다.

새벽 만원버스를 유명하게 만든 이는 고(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다.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로 시작하는 2012년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 연설이 계기였다. 서울 구로동을 새벽 4시에 출발하는 이 버스는 출발점부터 거의 만석이 된다. 이처럼 청소·경비 노동자로 새벽부터 만원이 되는 버스노선은 146번(상계~강남) 240번(중랑~신사) 160번(도봉~온수) 등 여럿이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2일 새벽 146번 버스를 타고 새해 첫 출근길의 근로자들을 만났다. 승객들은 한 총리에게 “사무실 직원들이 나오기 전에 빌딩 청소를 마쳐야 하기 때문에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근무하는 빌딩까지 뛰어야 한다”며 “첫차 시간을 10분쯤만 당겨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 총리가 “안 그래도 그런 요구가 많다는 말씀을 듣고 연말부터 서울시와 협의 중이며, 이달 중순부터는 15분쯤 빨리 출발하는 첫차를 타실 수 있을 것”이라고 하자 승객들은 “아이고, 정말 잘됐네”라며 소녀처럼 기뻐했다고 한다. 도시의 평온한 일상을 위해 새벽부터 애쓰는 이들의 노고에 머리가 절로 숙어진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