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위기의 2023년, 승자의 조건
올해의 승자는 놀랍게도(혹은 당황스럽게도) 그리스와 포르투갈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매긴 올해 경제성적표에서 나란히 1, 2위에 올랐다. 스페인과 이탈리아까지 더하면 유럽의 골칫덩이로 불렸던 PIGS 국가들이 모두 톱10에 들었다. 독일은 30위까지 밀렸다.

운이 좋았다고 볼 수도 있다. 지중해 국가들은 러시아의 가스와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를 피해 갔다. 올해 그리스의 성장률 전망치는 5.6%다. 전 세계 평균의 약 2배다. 아테네 증권거래소 주가지수도 올 들어 2.8% 오르며 글로벌 증시 폭락을 피했다.

단연 눈에 띄는 수치는 국가채무 비율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16%나 줄었다. 10여 년 전 국가 부도에 몰리며 유로존을 공멸 상태로 몰고 갔던 것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최근 통과된 내년도 예산은 흑자로 편성했다. 국가부채 상환을 제1 목표로 둔 재정 정책을 확고히 유지하고 있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는 “개혁이 실질적인 성과를 냈다. 2023년을 기대하고 있다”고 흥분했다.

포르투갈은 올해 월드컵에선 8강에서 탈락했지만, 경제만큼은 ‘승자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우승국 아르헨티나의 경제가 파탄 상태에 몰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수많은 외국 기업이 포르투갈에 제조 공장을 열고, 신생기업이 늘면서 실업률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올해 포르투갈의 성장률을 6.4%로 전망한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국가신용등급도 BBB+로 한 단계 올렸다. PIGS 국가를 따라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눈여겨볼 국가는 4위 이스라엘이다. 올해 정부 붕괴라는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지난해 8.1%에 이어 올해도 6.3%의 경제 성장이 확정적이다.

이스라엘은 제조업과 수출 기반의 기술집약적 산업구조를 갖고 있다. 우리와 비슷하다. 구별된다면 강력한 규제개혁과 혁신 풍토가 이스라엘을 ‘창업국가(startuo nation)’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정보기술(IT) 벤처 지원과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한 창업 생태계도 활성화돼 있다. 국가 자체가 거대한 스타트업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2023년의 승자는 누가 될까. 내년은 전례 없는 위기에서 출발할 것이다. 한국은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온다. 모든 게 불확실하지만, 승부는 기업과 기업인의 어깨에 달려 있다는 점은 단언할 수 있다. 기업가(entrepreneur)의 어원은 프랑스어 ‘entreprendre’이다. ‘시도하다’ ‘모험하다’는 뜻이다.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도전에 나서는 기업가정신이야말로 경제를 성장시키고 인류의 진보를 담보하는 원동력이다. 기업인들은 위기에서 성장의 모멘텀을 찾는다. 불황이 짙을수록 경쟁자들이 탈락하고, 톱티어 기업의 시장 장악력은 커진다. 호황기에선 찾을 수 없는 기회다.

‘희망 회로’를 돌리자는 얘기가 아니다. 한국은 이제 전기차 분야에서 세계 톱3를 노리고 있다. 철강에서도 누구보다 탄소저감 기술에 앞서 있다. 우주항공과 방산의 ‘킬러’가 될 탄소복합재 시장에서도 기회를 엿보고 있다. 화학에서는 바이오플라스틱 기술 개발이 막바지다. 사양산업이던 조선은 자율 운항과 친환경 선박 기술에서 명실상부한 글로벌 톱이다.

혁신은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낸다. 그동안 축적해온 미래 기술로 승부를 걸어야 할 때다. 위기를 축복으로 변모시킬 기업인들의 고군분투에 2023년을 걸어본다. 정부의 역할도 자명하다. 다시 기업가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