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50억 클럽' 의혹에도 변호사 등록증 챙긴 권순일
“대한변호사협회가 퇴짜를 놨지만 활동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을 겁니다.”

지난 10월 말 만난 한 법조인이 들려준 말이다. 권순일 전 대법관이 대한변협으로부터 “자진해 변호사 등록 신청을 철회하라”는 공문을 받았다는 내용을 처음 보도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그가 처음부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변협의 등록 거부는 강제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변호사법에 따르면 대한변협은 위법 행위로 기소됐거나 징계를 받은 자, 위법 행위로 인해 퇴직한 자의 변호사 등록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수사를 받고 있을 경우 변호사 등록을 거부할 규정은 없다.

권 전 대법관은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로비를 받은 인물들을 일컫는 ‘50억 클럽’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대법관 퇴임 후 대장동 개발사업자인 화천대유자산관리의 고문으로 취업해 매달 자문료 1500만원씩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퇴직 두 달 전인 2020년 7월에 내린 판결을 놓고 ‘재판 거래’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 당시 경기지사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 이 재판을 도운 대가로 화천대유에서 근무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권 전 대법관은 50억 클럽 진상조사 자체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어, 한참 뒤에야 기소 여부가 정해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대한변협이 최근 권 전 대법관의 변호사 등록을 승인하면서 두 달 전의 예견은 끝내 현실이 됐다. 권 전 대법관이 재판에 넘겨지지 않는 한 그가 변호사로 활동하는 것을 손 놓고 지켜봐야 한다. 법조계 반응은 냉담하다. “이미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도덕성에 흠집이 생긴 상황임에도 개의치 않고 변호사로 새 출발 하려는 모습에 실망했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대한변협은 지난 10월 권 전 대법관에게 보낸 첫 공문에서 “아직 해소되지 않은 의혹이 남아 있고 ‘언행 불일치’ 행보로 따가운 시선을 받는 만큼 더욱 깊이 자숙하고 겸허하게 처신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 세금으로 특혜를 누리며 고위직을 지낸 명망가가 다시 변호사로 법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후진적 문화는 타파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후배 법조인들의 따끔한 비판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