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독일 장갑차의 굴욕
어니스트 스윈턴 영국군 소령은 1차 세계대전 때 수많은 병사가 참호 속에서 죽어 나가자 묘안을 짜냈다. 진흙과 적의 철조망, 기관총 진지를 돌파하기 위해 트랙터에 궤도와 포를 장착하는 신무기를 고안해 상부에 보고했다. 극비리에 진행된 이 프로젝트 암호명이 ‘물탱크(tank)’였다. 이렇게 해서 신무기는 탱크로 불렸다. 초창기 탱크 모양이 물탱크처럼 둥글게 생겨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는 설도 있다. 탱크는 독일군에 공포감을 줬지만, 기동성이 떨어져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탱크가 전장의 주역이 된 것은 2차 대전 때다. 탱크의 중요성을 간파한 독일의 하인츠 구데리안 장군은 히틀러를 설득해 기갑부대를 만들어 ‘전격전(신속한 기동과 기습으로 적진을 돌파하는 작전)’ 개념을 수립했다. 독일은 1940년 프랑스 침공 때 양동작전을 펼쳤다. 1차 대전 때처럼 벨기에를 거쳐 프랑스를 공격해 들어갔다. 영국과 프랑스는 군사력을 벨기에 접경지역에 집결시켰다. 그러는 사이 구데리안 장군이 이끄는 독일 탱크부대는 아르덴느 숲을 통해 프랑스로 쏟아져 들어가 영국과 프랑스군 뒤통수를 때렸다. 수십만 명의 영국과 프랑스군은 덩케르크 해안으로 도망쳤다.

2차 대전에선 사막의 여우로 불린 독일의 에르빈 로멜, 미국의 조지 패튼 장군 등 탱크 지휘관들이 맹위를 떨쳤다. 그러나 핵폭탄과 미사일이 개발되면서 탱크는 한동안 퇴물 취급을 받았다. 그러다가 중동전과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 등을 거치면서 탱크의 중요성은 재확인됐다. 올 들어 우크라이나전에서 러시아의 탱크들이 곳곳에서 맥없이 당하면서 탱크 무용론이 일기도 했지만, 그 효용성은 여전하다는 주장이 대세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탱크와 장갑차 전통 제조 강국인 독일이 이 분야에서 굴욕을 당하고 있다. 독일이 폴란드에 제공한 레오파드 탱크를 수리하는 데만 1년 이상이 걸릴 정도로 사용하기 힘든 상태라고 한다. 최근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배속된 독일 최첨단 장갑차 푸마 42대 중 18대에서 많은 결함이 드러나 독일 국방부가 신규 구매를 중단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K방산엔 기회가 될 것 같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