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고택 복원이 전해준 가치
경남 창녕군 대지면 석리는 필자의 선대가 오래전 터전을 잡은 이후 일가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곳이다. 마을 중앙에는 10년 전 복원된 지방문화재 ‘창녕 성(成)씨 고가’가 200년 가까운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아석고택’으로 불리는 이곳에서 국제 람사르총회 때 방한한 각국 대표들이 대단히 즐거워하던 기억이 새롭다.

이곳은 1800년대 후반 흥선대원군 집권 시 철폐된 서원 건물을 비롯해 지속적으로 각지의 한옥들을 옮겨와 이어 맞춘, 200여 칸의 건물과 부대시설로 꾸며져 있다.

아석고택에는 여느 고가에선 볼 수 없는 특별한 내력이 있다. 1920년대에는 가옥 내에 정미소까지 갖춰 미곡을 수출하던 곳이며, 1960년대 들어선 매해 부처님오신날 즈음 서울로 공급되던 작약꽃 재배·출하의 중심지이자, 선친 우석 선생이 양파 재배기술을 보급하던, 말 그대로 ‘생산의 현장’이었다.

6·25전쟁 당시 미군 24사단 임시본부로 사용되던 이곳은 인민군의 공세로 인한 퇴각 및 문서 소각 과정에서 일부 가옥이 소실됐고, 전후 일가 대부분의 대도시 이주가 더해져, 이후 거의 비워진 상태였다.

세월이 흘러 필자의 어머니가 생전에 고향 집을 한번 보고 싶다고 하셔서 이곳을 방문했었다. 당시 폐허 직전의 모습을 목도한 필자는 ‘이곳을 당장 복원하지 못하면 남은 가옥마저도 멸실될 위기’라고 느끼고 1990년대 말부터 해체와 복원을 반복하며 한옥과 시설물을 꾸준히 세웠는데, 인허가에 많은 시간이 소요돼 복원까지 15년이나 걸렸다.

복원이 진행되면서 친지 간 교류가 활성화되고, 자연스레 집안의 소사와 선대의 정신적 유산까지 함께 복원되는 성과를 거뒀다. 아울러 거주지로서의 외형 복구 차원을 넘어 문화·교육 활동의 거점이자 다양한 담론과 학문을 논할 미니 콘퍼런스센터로 발전했다.

해체와 결합이 용이한 한옥의 특성을 고려한 조상의 지혜가 지금까지 이어져 전국 멸실 한옥의 각종 부재가 지속적으로 이곳 복원에 재사용돼온 바, 이야말로 작금의 화두인 친환경 가치가 1800년대 후반부터 3세기에 걸쳐 실현돼오고 있는 산 증거라 할 것이다.

이곳은 고택 외관을 온전히 유지하면서도 지하에 콘퍼런스 시설을 완비하고, 많은 학자와 연구자들에게 기증받은 1만여 권의 장서까지 구비함으로써 고전·인문·사회과학 연구는 물론 국제회의까지 개최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국내외 방문객 특히 일본 중국 베트남 방문객들로부터 큰 부러움을 사고 있다.

고택 복원을 통해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가 전편에서 다룬 필자의 방글라데시 ‘바로 사다 바리’ 유적 복원 및 친환경 공단 조성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이런 견지에서 필자는 국내외 유수 기업에 복원이 필요한 세계적 문화유산 한 개씩을 맡아 각자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기를 제안하며, 필자의 오랜 경험이 그 시도에 마중물 역할을 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