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엽 칼럼] 쌍용차 옥쇄파업에 씌워진 '후광'
재판은 세상과 역사를 바꾼다. 10년 전 한 대법관이 “건국하는 심정으로 썼다”던 느닷없는 ‘징용 배상’ 판결이 여태 동북아 질서를 뒤흔들고 있는 것처럼.

김명수 대법원이 보름 전 또 하나의 문제적 판결을 내놨다. 저 유명한 ‘쌍용차 옥쇄파업’ 최종심에서 노조 손을 번쩍 들어줬다. 법원 퇴거명령과 공권력 집행을 거부하며 경찰 헬기 등을 파손한 불법에 10억원대 손해배상을 명한 1·2심은 휴지 조각이 됐다. 그리하여 평택공장을 점거하고 77일간의 무법천지를 만든 불법파업은 ‘빛나는 투쟁’의 아우라를 얻었다.

2년 전 ‘전교조 법외노조 무효 판결’과 함께 사법사에 길이 남을 ‘친(親)노조’ 판결이다. 범법에 면죄부를 준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처럼 쌍용차 판결의 논리 구성도 너무나 듬성듬성하다. 법조문의 기계적 적용과 짜깁기 혐의가 짙다. 대법원은 ‘과잉 진압’이 위법이기에 극렬했던 노조 폭력은 정당방위라고 했다. ‘사회 통념상 용인되는 범위 내의 대응 행동’으로 봤다.

대법원이 제시한 경찰의 위법은 크게 두 가지인데 모두 동의하기 힘들다. 대법원은 경찰 헬기가 고도를 낮춰 제자리 비행하며 프로펠러 하강풍을 시위대에 쏜 것을 문제 삼았다. 경찰장비를 ‘통상의 용법’과 달리 사용해 생명과 신체에 위협을 가한 게 위법이라는 것이다. 헬기를 ‘공중이동’ 외의 용도로 쓰면 불법이라는 주장인가. 그렇다면 경찰차로 차로를 봉쇄하는 흔한 대응도 금지해야 마땅하다. 헬기 하강풍은 서해상 중국 불법조업 어선 단속 때도 애용하는 수법이다.

대법원이 지적한 두 번째 위법은 헬기에서의 최루액 공중살포다. 관련 규정에 최루액 ‘발사’나 ‘분사’는 언급돼 있지만 ‘살포’는 용어가 없으니 불법이라는 것이다. 기발한 접근이지만 헬기 살포는 30여 년 지속돼 온 항용 수법이다. 경찰 항공 운영규칙에는 헬기 기본업무로 ‘시위관리’가 명시돼 있다. 수뇌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업무’에 헬기를 투입할 수 있다는 조항도 있다.

쌍용차 ‘깜짝 판결’은 전임 정부를 거치며 압도적 다수파가 된 대법원 ‘진보 벨트’의 작품이다. 재판에 참여한 대법관 4명(박정화 김선수 노태악 오경미) 중 3명이 소위 ‘진보 판사’다. 이번 판결이 4년 전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의 결론과 판박이라는 점도 께름칙하다. 당시 진상조사보고서 역시 ‘저공비행으로 바람작전을 펼치고 헬기로 최루액을 살포한 게 위법’이라고 했다. 진보활동가 일색이던 진상조사위의 편향을 대법관들이 그대로 인용한 모양새다.

대법원의 평가절하와 달리 평택공장 진입 작전은 신중한 공권력 행사의 성공 사례다. 인화물질로 가득한 공장이 해방구가 돼 생산이 중단된 초유의 사태를 큰 불상사 없이 마무리했다. 진입 작전 바로 다음날 극적인 노사 합의도 성사됐다. 경찰이 오래 인내하며 절차와 원칙을 지킨 게 주효했다. 여야 정치권도 입을 모아 호평했다. 강기갑 당시 민노당 대표까지 “눈물 어린 환영의 박수를 보낸다”며 반겼다.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도 공정하다고 보기 힘들 만큼 요즘 대법원의 노동 관련 판결은 일방적이다. 통상임금 불법파견 등 모든 이슈에서 친노 편향이 뚜렷하다. 여기에 쌍용차 판결이 더해졌다. 이제 대법관들이 헌법·법률 대신 자신의 주관적·정치적 신념을 보편 양심으로 간주한다는 의구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화물연대 파업 철회를 보면서 많은 이들이 희망을 말했다. ‘드디어 전투적 노조의 시대가 저무는가 보다’고. 사법부가 ‘선택적 정의’로 치닫는다면 말짱 도루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