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모로코의 재발견
모로코는 영화 ‘카사블랑카’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배경이 된 곳 정도로 알려져 있다. 아직 ‘모로코가 어떤 나라?’라며 고개를 갸웃할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인구 3700만 명에 국토 면적이 한국의 4배가 넘는다는 사실, 아프리카 1위 관광대국에 최대 수산물 수출국, 세계 4위 올리브오일 생산국이란 사실을 알면 대개 깜짝 놀란다.

아프리카 서북부의 모로코는 스페인과 접한 지브롤터 해협을 기준으로 동쪽으로 지중해, 서쪽으론 대서양에 면하고 있다. 로마와 경쟁하던 카르타고의 세력권이었으나, 7세기 이슬람 군대의 모로코 정복 이후론 이슬람교를 받아들였다. 이 세력이 이베리아반도로 건너가 이슬람 국가를 세우기도 했다. 그렇게 형성된 무어인이 셰익스피어 희곡 <오텔로>의 주인공 오텔로이기도 했다. 모로코가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 교류의 중요 통로였던 것이다.

1000년 이상 왕국을 유지하던 모로코도 20세기 제국주의 침탈을 이겨내지는 못했다. 1912년 프랑스와 스페인의 보호령(식민지)으로 분할지배 당하다가 1956년 프랑스, 1958년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과 20세기 후반 이민·난민 증가로 모로코 사람들은 프랑스 스페인 등지로 많이 진출했다. 2019년 통계로 프랑스 거주 모로코인은 75만 명으로, 전체 프랑스 이민자의 20%를 점했다.

아프리카·중동 국가로는 첫 월드컵 4강에 오른 모로코 축구의 성장엔 이런 배경이 작용했을 것이다. 모로코는 스페인 등 유럽 주요 리그에서 뛰는 선수만 20명에 이른다. 이 중 이민 가정 출신이 14명이다. 이중국적이어서 모로코 대표로 발탁된 사례가 많다. 공격수 자카리아 아부할랄의 아버지는 “아들은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모로코인의 피가 흐른다”고 했다.

이번 월드컵은 모로코엔 식민 역사의 축구 복수극이라고 할 만하다. 모로코 대표팀은 스페인, 포르투갈을 차례로 꺾었다. 오는 15일 새벽(한국시간) 준결승전에선 프랑스와 맞붙는다. 카타르 월드컵은 이슬람 국가엔 거의 홈경기인 데다, 라마단(이슬람 금식기간)이 포함되지 않아 ‘모로코가 일낼 줄 알았다’는 전망도 있긴 했다. 지구 반대편 모로코의 재발견이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