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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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king) 달러, 갓(God) 달러.’ 1년 전 미국 중앙은행(Fed)이 테이퍼링을 시작한 뒤 달러 강세가 지속되면서 가장 많이 회자됐던 용어다. 하지만 최근 이 용어들이 갑자기 사라져 배경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역환율 전쟁 1년…원화는 왜 최대 희생양 됐나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달러 가치는 미국 자체적으로 머큐리(mercury) 요인과 마스(mars)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전자는 성장률 등 펀더멘털 요인인 데 비해 후자는 Fed의 금리 인상 등과 같은 정책적 요인을 말한다. “특정국 통화 가치는 그 나라의 경제 실상을 반영하는 얼굴”이라는 이론은 전자만을 고려한 시각이다.

올 들어 미국 경제는 1분기 -1.6%, 2분기 -0.6% 역성장하다가 지난 10월 말에 발표된 3분기 속보치가 2.6%(잠정치는 2.9%)를 기록하며 회복됐다. 머큐리 요인만으로 따진다면 달러 가치는 10월까지는 ‘약세’, 그 이후에는 ‘강세’가 돼야 했지만 정반대 현상이 발생했다.

작년 12월부터 테이퍼링을 추진한 Fed는 올해 3월부터 금리를 올리다가 인플레이션 지표가 6월을 정점으로 둔화하자 9월부터 방향 전환, 즉 피벗(pivot) 가능성을 내비쳤다. 달러 가치도 피벗 시사 이전까지는 ‘강세’, 이후에는 ‘약세’로 전환됐다. 올해 달러 가치가 주로 마스 요인에 의해 결정됐음을 뒷받침해주는 대목이다.

반사적 요인도 가세했다. 달러인덱스를 구성하는 6개국 통화 비중을 보면 유로화가 58%, 영국 파운드화가 12%를 각각 차지한다. 지난 2월 이후 유럽 경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침체했다. 이로 인해 유로화와 파운드화 가치가 떨어지는 과정에서 달러화 가치가 미국 자체 요인보다 더 강세가 됐다.

킹 달러가 머큐리 요인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이라면 오랫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마스와 반사적 요인에 의한 달러 강세는 상황이 바뀌면 급변할 수 있다. 최근 킹 달러라는 용어가 갑자기 사라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내년에 달러 가치가 올해와는 정반대 흐름으로 갈 수 있다는 점이다. Fed가 경기예측기법으로 가장 신뢰하는 장단기 금리역전 현상이 장기간 지속하는 가운데 격차도 80bp(1bp=0.01%포인트, 2년물과 10년물 기준) 이상 벌어졌다. 예측 기관 대부분은 내년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0%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책적으로도 Fed가 인플레만을 잡는 데 주력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외적으로 강달러 유도를 통한 인플레 수출은 다른 국가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중간선거 결과 하원에서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함에 따라 미국 재무부의 국채 바이 백(buy back·조기상환)을 통한 유동성 공급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도 지금의 전황으로 보면 내년에는 어떤 형태로든 종료될 확률이 높다. 이 경우 유럽 경제가 지정학적 위험과 에너지 위기 충격에서 벗어나면서 유로화와 파운드화 가치는 빠르게 회복될 전망이다.

문제는 역환율 전쟁의 최대 희생양이 한국 원화라는 점이다. 달러인덱스는 1년 전 96에서 지난 10월 초 114까지 오르다가 최근 104대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원·달러 환율은 1192원에서 1448원까지 급등(원화 가치 하락)하다가 1300원 밑으로 급락했다. 원·달러 환율이 달러인덱스 변동폭보다 더 크게 움직이는 냄비 장세가 나타났다. 여기에는 금리를 올려 외자 이탈을 방지하려는 한국은행의 의도가 빗나간 데다 원화의 국제화가 제대로 진전되지 않는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우리 경제와 외환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증시 붕괴론’과 ‘제2 외환위기설’을 퍼뜨리는 일부 비관론자들의 인포데믹(가짜 뉴스)도 가세했다.

정책당국은 외자 이탈이 한·미 간 금리 차보다 외환보유액 등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재인식해야 한다. 원화 국제화도 정권과 관계없이 지속해서 추진해야 한다.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는 인포데믹은 국민 전체를 생각하는 프로 보노 퍼블리코(pro bono publico) 차원에서 적극 규제해 나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