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지각 심사, 늑장 처리라는 국회 고질병이 올해도 어김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639조원 규모의 2023년도 예산안 세부 항목 증·감액을 두고 여야의 대치 끝에 법정 기한(12월 2일) 내 처리를 또 어긴 것이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오는 8일과 9일 본회의를 개최하려고 한다”며 “예산안 처리를 위한 중재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했으나, 여야의 현격한 시각차로 인해 여의치 않을 전망이다.

예산안 처리가 꼬인 데는 더불어민주당의 책임이 크다. 민주당은 예산 심사 막판 이태원 참사 책임을 묻겠다며 느닷없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안을 꺼냈다. 해임안과 국정조사, 예산안 처리가 뒤엉키면서 협상을 복잡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여야가 ‘윤석열표 예산’ ‘이재명표 예산’을 두고 맞붙으면서 심사가 지지부진하던 터다. 민주당은 대통령실 이전과 공공분양주택,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 등 윤석열 정부의 주요 예산을 줄줄이 칼질한 반면 공공임대주택과 지역화폐, 신재생에너지 등 ‘이재명표 예산’은 신설 또는 증액을 끝까지 고수해 집권당이 어느 쪽인지 헷갈릴 정도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예산 부수법안인 법인세, 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해 정부 제출 법안들도 모조리 발목을 잡으면서 준예산 편성 전망까지 나온다.

예산안 처리 지연의 보다 근본적 원인은 국회의 늑장 심사 악습이다. 정부 예산안은 해마다 9월 초 국회로 넘어온다. 하지만 여야는 국정감사 등에 힘을 쏟느라 뒷전으로 미뤄놨다가 11월이 돼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그나마 여야가 정쟁으로 시간을 허비하느라 증·감액을 최종 결정하는 예산안조정소위 심사 기간은 1주일도 채 안 된다. 예결특위 정책 질의마저 이태원 참사에 파묻힌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주요 선진국 의회의 예산 심사 기간이 3~4개월에 달하는 것과 대비된다. 여야는 상습 지각 처리 폐해를 개선하기 위해 2014년 ‘국회선진화법’을 만들어 예산안 자동 본회의 부의(附議) 제도를 도입했다. 그럼에도 2014년과 2020년 두 번만 빼고 법정 기한을 넘겼다. 스스로 만든 법까지 내팽개쳤으니 ‘집단 배임’과 다름없다.

부실·졸속 심사도 되풀이되고 있다. 여야가 극한 대립을 벌이다가 막판 법적 근거도, 감시의 눈도 없는 ‘소(小)소위’를 꾸려 밀실, 벼락치기 심사하는 관행이 올해도 이어진 것이다. 이런 병폐들을 없애기 위해 더 늦기 전에 예산안 심사 방식을 확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