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교육개혁과 인재 양성
매년 11월 특정일이 되면 날씨와는 상관없이 공항의 여객기 이착륙이 수십분간 멈추고 공무원과 기업체 임직원의 출근 시간도 한 시간씩 늦춰지며, 학교 정문이나 사찰 등에서 학부모들이 두 손 모아 기원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바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날이다. 아침 일찍부터 수험생의 지각을 막기 위한 비상수송 작전이 펼쳐진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만 벌어지고,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대학 입시에서 떨어지면 초·중·고를 거치면서 12년간 공부한 노력과 과외비·학원비를 포함한 막대한 교육비 투자가 모두 허사로 돌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뜨거운 교육열만큼 자녀 교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지만, 들어간 교육비에 비해 성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낮다고 해외 언론은 분석했다. 국가별로 학생 1인당 교육비 대비 근로자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비교해 보면 한국이 6.5배로 아일랜드(22.8배), 미국(10.6배), 독일(8.5배), 일본(7.8배)보다도 낮다(수치가 높을수록 성과가 좋다). 일례로 10대 학생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아일랜드보다 교육비를 40%나 더 쓰지만, 근로자 1인당 GDP는 아일랜드의 40% 수준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교육 투자 가성비가 최악이란 말이다.

특히 우리나라 학생들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평가를 받지만, 일터에서 중년에 접어들수록 이들의 역량은 OECD 국가 중 가장 빠르게 줄어든다고 한다. 대학에 입학하기까지의 공부에 지친 나머지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학습을 중단할 뿐 아니라, 지속적인 훈련과 자율적인 자기 계발을 소홀히 한다는 의미다.

대학 전공과 직업이 일치하지 않는 노동시장 미스매치도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편이다. 한국 대졸 근로자 중 절반이 대학교에서 배운 전공과 무관한 직업을 가진다고 한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한국 경제 발전의 핵심 동력이던 교육시스템은 이제 노동시장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침이 주어지지 않거나 오지선다형이 아니면 문제를 풀지 못하는 인재만 키워내는 지금의 우리 교육체계로는 신냉전·탈세계화로 정치 사회 경제 등 모든 분야의 질서가 흔들리는 ‘대전환 시대’를 헤쳐나갈 능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할 수 없다. 교육개혁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교육개혁은 천편일률적인 입시제도 개편과 대학 구조조정, 방만한 교육재정 운용 근절과 같은 현실적 과제를 넘어 미래 인재 양성이라는 백년지대계에 초점을 둬야 한다. 세부적으로는 대학생의 전공 선택과 변경에 유연성을 부여해 교육제도와 노동시장 간 불일치를 줄여나가고,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를 완화해 대학에 전공별 정원 조정 유인을 제공함으로써 대학 간 경쟁을 촉진하고 교육의 질을 제고해야 한다. 대학이 신산업 관련 학과 정원을 확대해 시장 수요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또 중·고등학교의 진로 상담 기능 확대·개선으로 학생 개개인이 재능과 관심에 기반해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한 줄 세우기와 문제풀이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적 해결 능력을 갖춘 인재를 기를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1년을 살려면 곡식을 심고, 10년을 살려면 나무를 심고, 100년을 잘 살려면 인재를 양성하라’는 사마천 <사기>의 구절을 과감하게 실천해야 할 때다. 우리의 미래는 최종적으로 사람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