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조규성의 '기쿠지로의 여름'
삼성 라이온즈의 전 외야수 박한이만큼 루틴이 요란스러운 운동선수도 흔치 않다.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배트를 오른쪽 겨드랑이에 끼우고는 양쪽 장갑을 풀었다 다시 조인 후 헬멧을 벗어 얼굴 아래에서부터 위로 훑으며 다시 쓰고 이어 발로 땅을 고른 뒤 두 발을 모아 제자리에서 두 번 뛰고 손으로 오른쪽 팔꿈치와 왼쪽 허벅지를 연달아 친 뒤 끝으로 배트로 홈 플레이트에 선을 긋는다. 그는 보기만 해도 ‘암세포’가 나올 것 같다는 이 복잡한 루틴을 유지하며 16년 연속 세 자릿수 안타의 대기록을 세웠다.

운동선수들에게 루틴은 단순한 동작의 반복을 통해 집중력을 키우면서 긴장을 푸는 심리적 안정제 역할을 한다. 테니스계의 ‘흑진주’ 세리나 윌리엄스는 매번 첫 서브 때는 다섯 번, 두 번째 서브 때는 열 번 볼을 땅에 튀긴 뒤 서브를 넣는다. 지나치게 긴 루틴은 독이 되기도 한다. 과거 슬로 플레이로 악명 높았던 골퍼 세르히오 가르시아는 샷 전에 그립을 쥐었다 폈다 하는 왜글을 수십 번씩 하다가 벌타를 먹은 적도 있다.

카타르 월드컵 한국 대표팀의 최고 스타가 된 조규성의 루틴은 음악이다. 그는 경기 전 일본의 유명 피아노 작곡가 히사이시 조의 곡으로 영화 OST로 쓰인 ‘기쿠지로의 여름’을 들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힌다고 한다.

루틴이 선수의 전유물은 아니다. 한국 프로야구 팬에게는 ‘약속의 8회’에 떼창하는 ‘연안부두’(SSG 랜더스), ‘브라보 마이 라이프’(두산 베어스), ‘부산 갈매기’(롯데 자이언츠), ‘남행열차’(기아 타이거즈) 같은 응원가가 루틴이다.

영국 프로축구팀 리버풀의 관중이 경기 시작 전 부르는 ‘You Will Never Walk Alone’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 응원가가 됐다. 월드컵 16강 진출의 절박한 기로에 선 한국팀과 팬들의 심정에 딱 맞는 가사 한 대목이다. “… walk on through the wind, walk on through the rain, though your dreams be tossed and blown, walk on, walk on with hope in your heart, and you’ll never walk alone…(바람을 뚫고 비를 헤치며 계속 걸어라. 비록 네 꿈이 흔들리고 날릴지라도 마음속에 희망을 품고 계속 걸어라. 너는 결코 혼자 걷지 않으리…)”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