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인플레보다 더 큰 고통이 온다
치솟던 달러가 크게 내렸다. 금리 상승세도 주춤하고 있다. 기준금리를 네 차례 연속 75bp(1bp=0.01%포인트)씩 올린 미국 중앙은행(Fed)이 속도 조절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돼서다. 지난주 공개된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은 그런 관측에 확신을 더했다. 위원 상당수가 조만간 인상 속도를 늦추는 게 적절하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때는 아니다. 월가는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고 있다. 첫째,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너무 높다. Fed는 내년 초까지 금리를 100bp 이상 더 올릴 것이고, 이에 따라 미 국채 10년물 금리도 다시 연 4%대로 올라갈 것이란 관측이 많다. 달러 강세가 정점은 지났을 수 있지만, 약세로 돌아선 건 아니란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여전히 높은 물가

둘째, 인플레이션의 하락 속도는 완만할 것이다. 특히 소비자물가지수(CPI) 기준 연 5% 언저리까지 내려간 뒤 쉽게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중고차 등 팬데믹에 따른 ‘일시적’ 상승 요인이 하락세로 전환하고 있지만, 임금 주거비 등 이른바 ‘끈적끈적한’ 물가 요인은 쉽사리 꺾이지 않는 영향이다. 지금처럼 미국 노동시장이 빡빡한 상태를 유지한다면 더욱 그렇다. 블랙록 등은 인구 고령화, 탈세계화, 탈탄소화 등으로 인해 고물가가 구조화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셋째, Fed는 인플레이션이 목표(2%대) 수준으로 낮아질 때까지 높은 기준금리를 유지할 것이다. 이른바 ‘higher for longer’(더 높은 금리를 더 길게)다.

넷째, 경기 침체가 다가오고 있다. 골드만삭스를 제외한 월가 금융회사 다수는 미국 경제가 내년 초 침체에 빠질 것으로 본다. Fed가 이렇게 금리를 높이고 오래 유지한다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침체의 징후인 미 국채 수익률 곡선은 이미 대부분 구간에서 역전됐다. 2년물과 10년물 금리의 역전 폭은 기록적인 80bp에 달한다.

다가오는 경기 침체

가계 소비가 어느 정도 버텨줄 것이고, 많은 기업이 부채를 낮은 금리에 리파이낸싱했기 때문에 부도가 속출하진 않을 수 있다. 그래서 골드만삭스 주장처럼 침체를 피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침체가 없다면 물가 하락은 더뎌지고 Fed는 높은 금리를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다. 사실 침체 우려로 유가가 급락해 인플레이션을 끌어내리고 있다. 미국이 침체를 피한다면 유가는 다시 오르고 물가 잡기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유럽의 침체는 기정사실이다. 그 깊이와 폭이 날씨에 달렸을 뿐이다. 겨울 기온이 예년보다 낮다면 천연가스 가격은 다시 급등할 수 있다. 중국은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봉쇄는 계속 이어질 것 같고, 경기 회복은 요원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마저 침체에 빠진다면 위험자산 회피로 인해 미 달러가 다시 오를 수 있다.

경제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어떻게 변할지 확언할 수 없다. 하지만 뱅크오브아메리카에 따르면 1980~2020년 선진국에서 인플레이션이 연 5%가 넘었을 때 다시 2%대로 회복하는 데 평균 10년, 최소 3년이 걸렸다. 세계 경제를 주시하면서 경계감을 유지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