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 칼럼] 민주당, 어쩌다 '사이버 레커' 조롱받는 처지 됐나
정치가 아무리 4류 소리를 들어도 이런 아사리판이 있었던 적이 있나 싶다. 국가 대사는 고사하고, 온통 SNS를 붙잡고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말꼬리 잡기와 비아냥들이 꼬리를 물고 대화와 토론, 숙의 민주주의는 찾기 어렵다. 정치인은 연예인화되고, ‘아니면 말고’ 식 가십성 이슈들만 판을 친다. 상대를 설득할 의지도, 기술도, 품격도, 촌철살인의 재치도 안 보인다. 갈등을 조정하는 정치의 기본은 실종된 지 오래다. 급기야 우리 정치가 ‘사이버 레커’로 조롱받는 처지에 몰렸다.

더불어민주당 20대 정치인이 같은 당 김의겸 대변인과 장경태 최고위원에게 “‘사이버 레커’들이 펼치는 지엽말단적인 주장을 가져와 헛발질만 하고 있다”는 비판은 정곡을 찌른다.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김 대변인, 김건희 여사 스토커를 방불케 하는 장 최고위원의 공통점은 철면피의 극치다. 김 대변인은 술자리 의혹이 거짓임이 드러났는데도 “제보를 받고 국정감사에서 확인하는 것은 국회의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그날로 돌아가도 같은 질문을 할 것”이라고 했다.

폭로도 기본이 있다. ‘팩트(사실)’ 확인이다. 이걸 건너뛰면 뒷골목 찌라시에 불과하다. 더욱이 그는 청와대 취재기자와 대변인을 지냈다. 대통령이 외부 행사에 가면 경호차 여러 대가 따라붙고 경호원들이 행사장에 미리 가 안전 점검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변호사 수십 명과 술을 마셨다면 외부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김 대변인은 기본 사실 확인조차하지 않고 질러버렸다.

주한 유럽연합(EU) 대사와 이재명 대표 간 면담 내용 왜곡 브리핑,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민주당 여성 의원 악수 연출 발언 등 그의 ‘아니면 말고’ 식 말이 한둘이 아니다. 국회의원 면책특권은 선동 도구로 쓰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다. 앞으로 김 대변인은 사실 확인을 기본으로 여기는 기자 출신임을 입에 담지 말라. ‘제2 국정농단’이라며 그를 두둔한 민주당 지도부도 사이버 레커 공범이다. ‘빈곤 포르노 화보 촬영’ 등을 사실 확인 없이 내뱉은 장 최고위원의 저질 입질은 정치를 희화화한다. 이게 청년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의 수준이라면 우리 정치 앞날도 암울하기 짝이 없다. 의원으로서 그렇게 할 일이 없다면 배지를 내려놓는 게 낫다.

지금 민주당에선 비정상이 판을 친다. 대장동, 백현동, 성남FC 후원금, 변호사비 대납 의혹은 모두 이재명 대표와 측근 개인의 일로, 당과 아무 관계가 없다. 이 돈은 당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대표의 선거에 쓴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이 대표 방어를 위해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들고 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민주당 정치인과 당원은 이 대표와 정치공동체”라며 “이 대표를 지키는 게 당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대표와 당의 일체화는 심각한 정치 퇴보다. 대표가 공적 권력을 사적으로 활용하고, 당이 이를 떠받치는 것은 전체주의 정당에서나 볼 수 있다. 제왕적 총재 시절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당 대변인은 일개 당직자 비리 의혹을 방어하는 논평들을 쏟아냈다. 공당이 이래도 되나. 따지고 보면 이 대표 관련 온갖 의혹을 격발한 것은 윤석열 정부가 아니다. 지난해 민주당 대선 경선 때 치열한 내부 경쟁에서 터져 나왔다. 그런데도 여권과 검찰에 온통 비판의 화살을 겨냥하는 것은 비겁하다.

민주당은 사법 리스크 방어도 모자라 이재명표 예산을 부활 또는 증액하고 정부 법안과 예산안은 줄줄이 퇴짜를 놓고 있다. 예산안의 ‘민주당 수정안’ 처리 불사까지 외치고 있다. 이 정도면 ‘야당 독재’가 빈말이 아닌 듯하다. 여소야대라도 집권 첫해엔 정권 주요 정책은 어느 정도 존중해주던 관행도 폐기하고 있다. 대통령실을 다시 청와대로 옮기라는 억지 주장까지 편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출범 두 달 만에 탄핵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이태원 참사 추모 촛불 시위에 민주당 의원들이 참여해 정권 퇴진을 외쳤다. 국회의원 개개인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런데도 당 지도부는 의원 개인 입장을 내세워 뒤로 숨었다. 대선 불복이다. 촛불 추모는 수단이고 퇴진이 목적이다. 광장 정치를 악용해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는 전형적인 ‘프로파간다’로, 대의 민주주의를 망가뜨리는 것이다. 이래 놓고 ‘정통 민주 진보 정당’의 70년 맥을 잇는다고 자부할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