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은의 생명의학] 암 치료 틈새시장의 강자 '방사성의약품'
원인 불명의 손떨림으로 고생하던 A씨는 방사성의약품을 이용한 뇌영상 검사 결과 파킨슨병으로 확진돼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 호주에 사는 전립선암 환자 B씨는 수술 후 방사선 치료, 항암 치료에도 꿈쩍하지 않던 전이성 전립선암이 방사성의약품 치료 후 절반 이상 줄어들어 완치의 희망을 이어가고 있다.

방사성의약품이란 세포 구성 물질이나 생화학적 경로에 작용하는 약물에 방사성동위원소를 붙여 몸속에 투여한 후 표적에 도달한 방사성동위원소가 내는 방사선을 이용해 질병을 진단·치료하는 의약품을 말한다. 진단용과 치료용이 있다. 진단용 방사성의약품을 이용하면 세포나 분자 수준의 인체 변화를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질병을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 효과를 빨리 알아낼 수 있다.

한편 암세포를 표적으로 하는 약물에 파괴력 있는 치료용 방사성동위원소를 붙여 암 환자의 몸속에 투여하면 암세포에 전달된 방사성동위원소가 내는 방사선이 암조직을 파괴한다. 방사성의약품의 강력한 암세포 표적 기능으로 정상조직 손상에 의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치료용 방사성의약품을 이용한 정밀 방사선 표적 치료다. 애플 창업자 고(故) 스티브 잡스가 췌장 신경내분비암 치료를 위해 받은 것이다. 신경내분비암 세포 표면에만 선택적으로 붙는 물질에 방사성동위원소를 결합시킨 약물을 이용한 ‘방사선 미사일 치료’다. 방사성의약품 치료는 수술, 방사선 치료, 항암제와 함께 암 치료의 강력한 플레이어로 부상하고 있다.

질병 진단 및 치료 시장에서 방사성의약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비약적으로 늘고 있다. 현재 80억달러(약 10조7000억원) 규모의 진단·치료 방사성의약품 시장은 2030년 260억달러(약 34조9000억원) 규모로 폭풍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암 치료 방사성의약품 시장은 연평균 27% 늘어나 2030년 160억달러(약 21조4000억원)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2025년 전 세계 항암제 예상 매출 2730억달러(약 366조6000억원) 가운데 방사성의약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5%에 못 미치는 정도이나, 이후 10년간 두 배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방사성의약품에 대한 글로벌 제약기업의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지난 몇 년 사이 총 100억달러(약 13조4000억원)에 이르는 대규모 인수합병이 이를 뒷받침한다. 노바티스는 60억달러(약 8조원)를 투자해 방사성의약품 기업 AAA와 엔도사이트를 인수합병하고 이들이 개발하던 신경내분비암 치료 방사성의약품 ‘루타테라’와 전립선암 치료 방사성의약품 ‘플루빅토’를 출시했다. 이보다 앞서 바이엘은 전립선암 치료 방사성의약품 ‘조피고’ 개발 기업 알제타를 29억달러(약 3조9000억원)에 인수했다. 사노피, GSK, 바이오젠 등 빅파마도 방사성의약품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아울러 전 세계 20여 개 유망 스타트업이 제2의 AAA, 엔도사이트를 꿈꾸며 제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이들이 2026년 이전 출시를 목표로 개발하고 있는 방사성의약품이 28개 이상에 달한다. 방사성의약품 시장의 급속 성장을 예상하는 배경이다.

국내에서도 바이오벤처 기업·대학·연구기관·병원(산학연병)이 손잡고 방사성의약품 연구개발에 나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국내 개발 방사성의약품도 시장에 나와 의료 현장에 이용되고 있다. 정부에서도 국가RI신약센터를 설립해 방사성의약품 개발과 방사성동위원소의 신약 개발 활용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수출용 신형 연구로 건설에 착수해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의 미래 수요에 대비한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암 치료의 새로운 강자 방사성의약품 시장에서 한국이 소외되지 않기 위해선 산학연병의 개방적 혁신을 통해 연구개발 저변 확대와 제품화 강화에 나서야 한다. 정부는 연구개발 지원과 인적·물적 인프라 확충, 방사성의약품 맞춤형 규제로 뒷받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