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에서 열린 현대차동차그룹 전기차 공장 기공식.   현대차 제공
지난달 25일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에서 열린 현대차동차그룹 전기차 공장 기공식. 현대차 제공
북미에서 최종 조립한 전기차에만 대당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발효 3개월을 맞았다. 지난 8월 16일 IRA 발효 이전 전기차 계약분은 세제 혜택을 받는 데 문제가 없고,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출고 대기 물량을 감안하면 당장 피해는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내년부터 가격 경쟁력 약화에 따른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IRA는 미국 내 투자 및 생산 확대와 미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까지 겨냥하고 있어 한국 경제와 산업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고속 성장 중인 미국 전기차 시장을 놓고 글로벌 완성차, 2차전지 업체 간 주도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

최근 '미국 IRA의 국내 산업 영향과 시사점' 보고서를 발간한 황경인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의 도움으로 핵심 내용을 정리했다.

북미에서 조립된 전기차만 혜택

IRA는 친환경 에너지, 헬스케어 등에 4370억달러 규모 재정을 투입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겠다는 법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1년 넘게 추진한 2조달러 규모의 ‘더 나은 재건(BBB)법’이 과다한 예산 규모 등을 이유로 미 의회의 반대에 부딪히자 미 행정부가 지출 범위와 예산 규모를 축소한 IRA 법안을 새롭게 제출했다.

이 법안은 지난 8월 7일과 12일 각각 상원과 하원을 통과한 뒤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8월 16일 최종 발효됐다. 법안 구조를 보면 먼저 지출 측면에서 총재정 투입의 84.4%에 이르는 3690억달러 예산이 에너지 안보 및 기후 변화 대응 부문에 편성됐다. 인플레이션 억제라는 법안 취지는 수입 측면에서도 잘 나타난다. IRA는 세입을 7370억달러 이상 확대해 계획된 지출의 재원 마련은 물론 미국 경제의 만성적인 재정적자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그래픽=전희성 기자
그래픽=전희성 기자
국내 산업 관점에서 IRA 중 특히 주목할 조항은 ‘섹션 13401’이다. 여기엔 미국에서 판매되는 전기차 세액공제(사실상 보조금) 적용 조건이 명시돼 있다. 특히 8월 9일 발효된 ‘반도체와 과학법(CSA)’과 더불어 미국 중심의 공급망을 구축해 반도체, 전기차, 2차전지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겠다는 의도가 명확히 드러나 있다.

섹션 13401을 요약하면 전기차 세액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①최종 조립 ②배터리 핵심 광물 ③배터리 부품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 번째 ‘최종 조립 조건’은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북미에서 최종 조립이 이뤄진 전기차만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조건은 IRA 발효 즉시 적용됐다.

두 번째 ‘배터리 핵심 광물 조건’은 전기차 탑재 배터리에 내재된 핵심 광물이 일정 비율 이상 미국 또는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서 추출·처리되거나 북미에서 재활용된 광물에 한해 3750달러의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핵심 광물 비율은 2023년 40%를 시작으로 매년 늘어나 2027년 이후 80%까지 높아지는 구조다.

세 번째는 ‘배터리 부품 조건’이다. 전기차 탑재 배터리 부품 중 일정 비율 이상이 북미에서 제조·조립된 경우에 한해 3750달러 규모의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배터리 부품 조건 역시 2023년 50%에서 매년 증가해 2029년 이후부터는 100% 북미에서 제조 또는 조립이 이뤄져야 한다. 배터리 관련 두 규정은 2023년 1월 1일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미국 전기차 공장 없는 현대차 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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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A 발효가 국내 자동차산업에 미치는 단기 영향은 명확하다. 최종 조립 조건 충족이 어려운 현대자동차, 기아 등은 당장 전기차 세액공제 혜택을 못 받아 경쟁사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현대차, 기아 등이 미국에서 판매하는 전기차는 전량 국내에서 수출하는 물량이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조만간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 GV70 전기차 일부를 생산할 예정이나 물량은 제한적일 것으로 관측된다. 현대차그룹은 조지아주에 연산 30만 대 규모의 전기차 전용 공장을 짓기로 했지만 2025년 이후 가동할 예정이다. 신공장 가동 시점인 2025년 전까지는 현대차·기아가 판매하는 전기차 대부분이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최종 조립 조건을 충족하는 경쟁 업체는 모두 대당 7500달러 상당의 세제 혜택을 받는다. 포드, 제너럴모터스(GM) 등 미국 기업은 물론 북미 지역에서 공장을 가동 중인 독일, 일본 등 경쟁사의 일부 차종은 IRA 세제 혜택 대상에 포함됐다.

테슬라, GM 등은 내년부터 업체당 한도 조건(20만 대)이 없어지면서 향후 배터리 관련 조건 충족 여부에 따라 2023년부터 판매차 전량에 대해 세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미국 전기차 시장 1위인 테슬라의 독주가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아이오닉 5, EV6 등이 호평받으며 미국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높여가던 현대차·기아에 IRA 발효는 큰 악재가 될 수 있다.

IRA가 중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내년부터 시작돼 점차 강화될 배터리 관련 규정은 국내는 물론 외국 기업도 충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흑연은 중국에서 생산되는 물량이 82%에 달한다. 리튬 정제는 미국의 FTA 미체결국인 인도네시아에서 주로 이뤄지고 있다. 배터리 핵심 소재인 양극재와 음극재 또한 중국 의존도가 60%를 넘는다. 세계자동차제조협회(AAI)는 IRA 발효로 수년 내 모든 전기차가 세제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2차전지 산업은 중장기 수혜

한국 2차전지 산업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는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지만 최근 격차를 상당히 좁혔다. 올해 1~9월 기준 전체 시장 점유율로 따지면 중국 CATL, 한국 LG에너지솔루션, 중국 BYD 순이다. 중국 시장을 제외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 경우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가 각각 1위, 4위, 5위로 올라선다.

주목할 부분은 최근 국내 배터리 3사가 미국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홀랜드에 독자 공장을 운영 중이며, GM과 합작으로 오하이오 테네시 미시간에 공장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스텔란티스와는 공동으로 캐나다 온타리오에 공장을 신설할 예정이다.

SK온은 가동 중인 조지아 공장에 이어 조지아 2공장을 증설 중이며, 포드와 합작으로 켄터키와 테네시에 공장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삼성SDI는 스텔란티스와 공동으로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국내 2차전지 기업의 미국 생산 기반이 계획대로 확대되면 2025년 미국 시장 합산점유율이 56.4%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SNE리서치)이 나온다.

북미 지역 생산 기반 확대 추세가 규모와 속도 면에서 모두 일본 중국보다 우위에 있다는 점, 미국 내 제조 기반을 갖춘 완성차 업체와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IRA 발효가 중장기적으로 국내 2차전지 산업에는 수혜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IRA 발효 이후 미국 시장에서 중국 배터리 기업의 배제가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반사이익도 기대되는 상황이다. 다만 리튬, 흑연 등 핵심 광물의 생산 및 정제를 중국 등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 2차전지 기업들도 배터리 핵심 광물 조건을 충족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지 생산 앞당기고 공급망 다변화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3월 연두교서에서 ‘바이 아메리칸’을 강조하며 “더 많은 차와 반도체를 미국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기차에 대한 사실상 차별적 보조금 정책을 담은 IRA 섹션 13401조항 역시 전기차와 배터리 분야에 적용된 바이 아메리칸 기조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IRA를 중간선거용이라고 평가 절하하지만 기후변화 대응 강화, 중국 견제, 미국 중심 공급망 재편 등 정책 기조는 선거 이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美 IRA '섹션 13401'과 한국 기업·정부가 해야 할 일 [김일규의 IRA 집중 분석]
미국 중간선거 결과 IRA 반대 기류가 컸던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을 탈환했지만, 민주당이 상원 수성에 성공하면서 IRA가 폐기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는 게 중론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13일 윤석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국 기업들이 자동차, 배터리 등 분야에서 미국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이런 점을 고려해 IRA 이행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고 했지만, 큰 틀에선 방향이 바뀌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황경인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선거가 끝난 만큼 한국 측 건의를 어느 정도 받아들일지가 관건”이라며 “기존 법안의 폐기 등 전향적인 해법 마련은 어려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철저한 대응이 필요하다. 기업 차원에서는 시장 점유율 방어를 위한 선제적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현대차는 앨라배마 공장의 개조 또는 증설을 신속하게 추진하고 조지아주 공장 가동 시점도 2025년에서 최대한 앞당길 필요가 있다. 2023년부터 적용되는 배터리 관련 규정에 대비해 국내 2차전지 기업과의 협력 관계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배터리 핵심 광물 및 부품 조건은 외국 완성차 업체도 똑같이 어려움을 느끼는 만큼 2차전지 공급망 구축에 힘을 쏟아야 한다.

EU·일본 등과 협력, 다자간 대응 필요

정부 역할도 중요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협상을 통해 IRA 유예기간을 최대한 확보하는 등 예외 조치를 받아내는 것이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다. 다만 미비된 규정에 대해 미 재무부가 후속 가이드라인을 연내 마련하기로 한 만큼 실무협상을 통해 우리 이익이 최대한 확보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동시에 유럽연합(EU), 일본 등과 협력해 다자 간 대응에도 나서야 한다. 유럽과 일본은 한국과 입장이 비슷하다. 앞서 EU 집행위원회는 미국 정부에 전기차 보조금과 관련한 차별적 요소를 없애고, WTO 규범을 완전히 준수해달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법 테두리 내에서 각국의 우려 사항을 다룰 준비가 돼 있다”고 답했다.

美 IRA '섹션 13401'과 한국 기업·정부가 해야 할 일 [김일규의 IRA 집중 분석]
국내 2차전지 기업은 배터리 원료 및 소재의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EU도 IRA와 비슷한 ‘원자재법’을 통해 탈중국 공급망 구축 계획을 밝힌 만큼 공급망 다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신규 광산 개발 및 투자는 고도의 리스크가 수반되는 장기 프로젝트로, 기업 혼자 힘만으로는 성공할 확률이 낮다. 금융, 세제, 정보 제공 등 배터리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정부의 지원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김일규 산업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