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우크라이나 침공 상징' 크림대교
흑해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크림반도는 줄곧 주변 강대국들의 각축장이었다. 세력 판도에 따라 손바뀜이 심했다. 스키타이로부터 로마, 몽골, 오스만제국을 거쳐 소련과 우크라이나로 주인이 계속 바뀌었다. 2014년엔 러시아가 합병을 선언했다.

명칭도 마찬가지다. 1990년 이전까지는 영어식인 ‘크리미아반도’로 표기되다 그 후 러시아식(크림반도)으로 바뀌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올초 각국 정부에 표기를 ‘크름 반도’로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크름은 현지 원주민 타타르인들의 말로 ‘나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키예프를 키이우로 변경한 것처럼, 명칭부터 원래 주인에게 찾아주자는 호소다. 실질적 지배이건 명칭이건 크림반도를 둘러싼 세력 각축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난 8일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를 연결하는 크림대교(케르치해협 대교)에서 큰 폭발사고가 나 주목된다. 크림대교를 지나던 트럭에서 폭탄이 터졌고, 불이 철도 교량을 지나던 화물열차 연료탱크 7량으로 옮겨붙으며 거대한 화염과 폭발이 있었다. 이 사고로 3명이 사망하고, 대교 운행이 전면 중단됐다. 외신들은 “사고 전날 70회 생일을 맞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실질·상징적으로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크림대교는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를 연결하는 핵심 보급로이자,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상징물과도 같다. 푸틴은 2014년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반도를 빼앗자마자 대교 건설에 나섰다. 70억달러(약 9조9750억원)를 쏟아부어 4년 만에 전장 18㎞의 유럽 최장 대교를 완성했다. 푸틴은 직접 트럭을 몰고 개통식에 참석하는 등 대교 개통을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는 데 십분 활용했다. 실제로 크림대교는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안전한 후방 보급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번 사고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새 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정부 소행이라며 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우크라이나도 “크림대교 파괴는 시작일 뿐”이라며 부인하지 않았다. 일각에선 푸틴의 극단적 선택(핵 공격) 가능성까지 점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장에 위기 경고음이 가득하다.

박수진 논설위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