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준의 인문학과 경제] 代 끊길 위기 처한 '대한사람'…대안은
애덤 스미스는 1776년 출간한 <국부론>에서 노동자의 임금은 최소한 “가정을 꾸려 노동자 종족을 이어갈 수준은 돼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가 ‘노동자 종족(race of labourers)’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대대로 임금 노동자들을 배출하는 계층이 필요하다는 취지이지 생물학적 인종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반면에 2022년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노동자의 ‘종족’이 심각한 문제로 부상해 있다.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애국가의 각 절은 이렇게 끝난다. 현재 발표되는 각종 인구 관련 통계와 예측 수치들을 보면 ‘대한’에 사는 ‘대한사람’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주변을 보면 필자와 같은 전후 베이비붐 세대는 늙어가고 있고 이들의 뒤를 이을 자식 세대는 결혼해 아이 낳기를 주저한다.

‘대한사람’이 급속히 고령화되고 있으며 아예 ‘대한사람’의 대가 끊길 위험마저 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안에서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뉴스거리다. “대한민국,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다시 기록하다.” 영국 BBC가 8월 25일에 내놓은 한 보도의 헤드라인이다. 올해의 대한민국 합계출산율 0.81명이 작년 기록인 0.84명을 깼음을 알리는 기사다. 전반적으로 잘사는 나라들의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으나 대한민국은 출산율 감소 속도가 매우 빠른 게 문제임을 지적했다. 미국의 CNN도 8월 26일에 같은 내용을 보도했고, 프랑스의 르몽드 지(紙)는 6월 3일에 한국의 급속한 고령화에 대한 기사를 게재했다.

젊은 한국인들이 아이를 낳지 않아 한국인 전체 숫자가 감소하는 것 그 자체가 문제인가? 그렇기도 하지만 보다 심각한 문제는 <국부론>이 말한 의미에서의 ‘노동자 종족’ 감소다. 결혼과 육아에 있어 부모의 넉넉한 지원이 가능한 계층에서는 인구절벽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 근로자 복지가 최고 수준인 직장에 다니는 여성들도 육아를 선택할 때 고민이 덜 할 것이다. 그러나 부모의 든든한 지원을 기대할 수 없고 직장의 복지 수준이 완벽하지 않은 많은 중산층 집안 젊은이들은 결혼을 주저하게 되고 결혼한다고 해도 아이 낳기를 주저한다. 생계 자체가 버거운 계층의 젊은이들은 연애마저 사치라고 여긴다. ‘대한사람’의 절대다수인 중산층과 근로계층 자녀들이 맘 놓고 결혼하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과연 누가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렇다고 세계 국내총생산(GDP) 순위 10위의 ‘선진국’ 대한민국의 경제가 가만히 앉아 인구절벽에 부딪혀 좌초될 날만 기다리고 있지는 않는다. 인구절벽에 대한 실질적 해법을 시장 참여자들은 이미 찾아낸 바 있다. 이미 몇십 년 전부터 대한민국의 경제현장에서 필수 노동력 부족은 ‘대한사람’이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로 해결해왔다. ‘대한사람’들이 회피하는 업종의 중소기업, 일은 힘들고 보수는 적은 농업과 수산업 작업장, 간병인이 필요한 병실, 식당 주방에서 외국 출신 노동자들은 한국인 ‘노동자 종족’이 사라진 자리를 채워줬다. 이삿짐 날라주는 중년 한국인 ‘사장님’이 건장한 몽골인 청년들을 대동하고 등장하는 것은 이제 친근한 풍경이다.

한국 경제의 밑바닥에서만 외국인들이 진땀을 흘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최고의 기업 삼성전자에는 약 500명의 외국인 임직원이 연구개발 파트에서 일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외국인 임직원 70여 명이 연구개발, 브랜드 부서 등에 배치돼 있다.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한 쿠팡 한국 사무실에서는 250명의 외국인이 근무하고 있다.

임박한 또는 이미 시작된 고령화로 인해 ‘대한사람’만으로는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 시대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외국인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불가피한 선택이다. 또한 경제활동에서 세금을 뜯어내 먹고사는 정치권도 경제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야 마땅하다. 이 점에서 법무장관의 이민청 설립 제안은 매우 적절한 구상이다. 그를 미워하는 정치인들도 ‘대한사람’이 아닌 외국인 ‘노동자 종족’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함께 고민할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