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말 많고 탈 많은 한·일 외교
문재인 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관계는 물과 기름 비슷한 것이었다. 오죽하면 두 사람 사이를 빗대 ‘화성 남자, 금성 남자’란 말이 있을 정도였다.

2018년 5월 9일 도쿄 총리 공관에서의 정상 오찬 때 아베 총리는 한글로 ‘문재인 대통령 취임 1주년 축하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딸기 케이크를 깜짝 선물로 내놨다. 배석한 인사들이 손뼉치고 휴대폰으로 촬영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졌지만 불쑥 나온 문 대통령의 한마디로 싸늘해졌다. “임플란트 시술을 많이 하고 해서 이가 안 좋아 단 것을 잘 못 먹는다”며 사양한 것이다. 물론 문 대통령은 과거 청와대 수석 시절 이를 10개나 뺄 정도로 치아가 좋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부드러운 케이크 한입 베어 먹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석 달 전 평창올림픽 때 두 사람에게 큰 앙금이 남는 일이 있었다. 개막식 직전 열린 회담에서 아베 총리가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유도하기 위해 한·미 군사훈련을 연기한 데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문 대통령은 “주권과 내정에 관한 문제로, 총리가 직접 거론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면전에서 되받았다. 아베 총리는 마이크 펜스 당시 미국 부통령과 공식 리셉션 행사장에 35분 늦게 도착했고, 그나마 두 사람은 리셉션장에는 들어가지도 않았다.

역대 대통령 중 일본에 가장 개인적 원한을 가질 법한 사람 중 하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중앙정보부에 의해 동해에 수장될 뻔한 그가 납치된 곳이 바로 도쿄다. 그러나 미래지향적 한·일 파트너십의 시금석이 된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끌어내고, 일본 문화 개방으로 한류 열풍의 물꼬를 튼 사람도 그였다.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망각하는 것은 파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못된 과거에 발목이 잡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더 큰 파멸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 간의 약식 정상회담을 놓고 뒷말이 많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 측을 찾아간 것에 대해 ‘굴종 외교’라고 맹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짧은 만남이더라도 양국 정상 간 33개월 만의 회동 의미를 속단하기는 이르다. 더욱이 일본어 한마디 못 하는 미국 유학파 대학교수를 주일 대사로 보내고, 외교부 대일 라인을 초토화한 문 정부와 민주당 인사들이 그런 비난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