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정상화법’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정부가 매년 남는 쌀을 의무적으로 사주도록 해 막대한 예산 지출은 물론 농업 구조조정을 가로막아 근본적인 경쟁력을 훼손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답도 없는 퍼주기로 긴축재정의 와중에 혈세를 탕진하면서 쌀 과잉 생산을 부추길 게 아니라 농업의 산업화 등 체질 개선에 주력해야 할 때다.

민주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중점과제 7개에 포함했다. 예상보다 3% 이상 초과 생산되거나 가격이 전년보다 5% 이상 떨어지면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시장 격리)하도록 한 법안이다.

민주당은 쌀값 하락에 대응한 농가소득 보전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 법안대로라면 해마다 쌀 매입에 1조원이 넘는 예산을 쏟아부어야 한다. 정부는 지난해 수확한 쌀 가운데 초과 생산된 37만t을 사들이는 데만 약 7900억원을 썼다. 올해 초과 생산량 50만t을 매입하려면 1조원이 들 전망이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보관 비용은 별도다. 정부가 사들인 쌀은 3년 뒤 매입가의 10~20%에 주정·사료용으로 팔리는 게 현실이다.

예산 낭비보다 심각한 문제는 쌀 생산 감축 기조를 무너뜨려 농업 구조조정 노력을 좌초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쌀 공급 과잉을 해소하고 밀·콩 등 전략 작물 수입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2000년대 이후 쌀 생산 감축을 유도해왔다. 2000년 529만1000t에 달했던 쌀 생산량은 2021년 388만2000t으로 줄었다. 그런데도 밀가루 제품, 육류 소비 증가 영향으로 쌀 소비가 한층 빠르게 줄면서 공급 과잉은 여전하다. 2000년 93.6㎏이던 1인당 쌀 소비량이 지난해 56.9㎏으로 떨어졌다.

쌀 의무매입 등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농민 과보호 정책은 과잉 생산이란 고질병을 악화시킬 뿐이다. 다른 작물 재배는 포기하고 상대적으로 쉽고 판매가 보장된 쌀농사에 뛰어들 여건을 정부가 조성해선 안 된다. 초유의 복합 경제위기 속에 재정 긴축에 나선 정부가 쌀을 무작정 사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농업 혁신과 체질 개선에 적극 나서도 많이 늦었다. 쌀은 남아도는데 밀은 99.5%, 콩은 63.2%나 수입해 식량 자급률이 20%에 그치는 게 한국 농업의 위기적 현주소다. 스마트팜 확대, 전략 작물 확충, 기업의 농업 진출 허용·유도 등을 통해 농업이 고용과 부가가치를 제대로 창출하는 첨단산업이 되도록 구조 개편에 나설 때다. 예산은 이런 데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