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최후의 보루'로 부상한 기업들
코로나19 사태는 미증유의 위기 국면에 정부가 더 이상 ‘최후의 보루(last resort)’가 아닐 수 있음을 입증했다. 정부가 미지의 바이러스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새 자칫 무너질 뻔한 사회 시스템을 지탱한 건 기업들이었다. 미국에선 아마존이 고립된 소비자들에게 생활필수품과 의료용품을 배송했다. 당시 84만 명에 달했던 전 세계 직원의 임금을 인상해 이들의 주머니 사정을 두껍게 했다.

'인플레 방어벽' 대형마트

한국도 다르지 않았다. 쿠팡 등 e커머스 기업들은 ‘실핏줄 배송 시스템’을 활용해 소비자들에게 안전하게 이용할 물품을 전달했다. 대면접촉이 사실상 멈춘 상황에서 기초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놓친 독거노인들의 일상을 챙긴 건 hy(옛 한국야쿠르트) 아줌마들이었다. 이들이 없었다면 코로나 초기 정부가 안정적으로 대응하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다.

코로나 창궐로부터 2년 반이 흐른 지금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은 희미해졌다. 그렇다고 기업이 정부의 사회 안전망 역할을 넘겨받는 흐름까지 약해진 건 아니다. 지금 시장에선 글로벌 물류망 훼손과 최악의 이상기후가 야기한 음식료값 급등세가 한창이다. 이런 와중에 가정주부, 직장인의 주머니 사정에 실질적 도움을 주는 건 대형마트, 편의점들이다.

이들은 정부가 지난 7월 관세 인하 등의 조처를 하기 한참 전부터 세계 곳곳의 납품처를 이 잡듯이 뒤졌다. 글로벌 시장이 급등세를 타기 전 소고기, 원두 같은 식품과 원재료를 싼값에 대량 구매해 국내 식품 가격 상승세를 저지하는 ‘방어선’ 역할을 했다.

치킨에서 시작해 피자, 탕수육, 햄버거 등으로 이어진 ‘반값’ 시리즈는 최고경영자(CEO)에서부터 말단 상품기획자(MD)까지 관련 유통회사 전 구성원이 치열하게 노력한 결과다. 정부가 도와준 건 없다.

단순 노동인력의 이탈로 만성화 조짐을 보이는 인건비 급등 문제를 완화하는 건 로봇 기업들이다. 이들이 외식매장에 공급한 로봇은 국수를 말고, 치킨을 튀기며, 커피를 내리는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고 있다. 국수, 치킨, 커피값이 오르는 것을 늦추는 ‘주연’들이다. 격변의 시대에 전 세계를 상대로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기업들이 국가에 봉사하려는 목적으로 이런 일을 할 리 만무하다.

오프라인 유통사들만 해도 그렇다. 이들은 2010년대 중반 이후 e커머스에 빼앗긴 주도권을 되찾아오기 위해 절치부심 중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선 판이 흔들리는 지금 ‘식품의 강자=오프라인 매장’이란 인식을 되살리는 방법밖에 없다. 상품가격이 지금보다 더 올라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 일을 막는 것도 절체절명의 숙제다. 디플레이션은 곧 파국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이 동인(動因)이 돼 이들을 절실하게 뛰도록 만드는 것이다.

정부, 기업 걸림돌 치워줘야

‘책임질 일 만들면 안 된다’는 무의식이 뿌리 박힌 공무원들이 기업인보다 앞서 뛰기를 기대하는 건 언감생심이다. 그게 국가적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일이어도 그렇다. 지금 정부·기업은 위기 극복의 길에서 이인삼각 경주하는 동반자 관계가 돼야 한다. 이는 대국민 서비스 효율성 제고 측면에서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행여 함께 뛰는 파트너 앞의 걸림돌을 제거해주기는커녕 족쇄를 묶고 뛰게 하는 정부여선 안 된다. 각 부처가 ‘친기업 과제’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은 고무적이지만, 새 정부 규제 개선 1호 과제(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마저 정치적 부담에 철회되는 등의 안타까운 일들이 종종 벌어지고 있어서 하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