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금융 서비스도 넷플릭스처럼
지난해 12월 동남아시아에서 호출형 승차 공유 서비스로 유명한 그랩이 나스닥에 상장해 화제가 됐다. ‘동남아의 우버’로 불리는 그랩은 교통에서 시작해 쇼핑, 핀테크 등 다양한 디지털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성장한 흥미로운 사례다. 그랩처럼 전통적인 금융회사가 아니면서도 핀테크 업계에 진출하는 사례가 최근 전 세계적으로 빈번해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토스, 카카오, 네이버와 같은 기업들이 국내 핀테크 산업을 주도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표적인 규제 산업인 금융 서비스가 고객 행동의 변화와 높아지는 기대치 속에서 전례 없는 변화를 겪고 있다. 한국의 경우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올해 초 시작하면서 세계적인 금융업계의 흐름에 발맞춰 디지털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마이데이터가 성공적으로 구현되면 고객의 데이터 제어 능력을 향상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오늘날의 고객들은 금융회사의 규모나 명성만 가지고 금융 상품을 선택하지 않는다. 얼마나 가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지가 고객의 결정을 좌우한다. “최근 고객들은 우리를 다른 은행, 또는 결제 솔루션과 비교하지 않는다. 그들은 넷플릭스 경험과 우리를 견주고 있다”는 HSBC 모바일 결제서비스 페이미 임원의 말은 변화한 고객의 기대를 잘 대변한다. 여기서 말하는 ‘넷플릭스 경험’이 단순히 콘텐츠를 즐기는 것만 의미하는 게 아니듯, 금융 서비스의 디지털 경험 또한 계좌 관리 및 거래에만 국한돼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아직 격차를 보인다. 어도비가 발표한 2022 디지털 트렌드 금융업 보고서에 따르면 자사가 제공하는 디지털 경험이 고객의 기대를 충족하고 있는지에 대해 12%만이 그렇다고 답해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 혁신을 수용하고 초개인화된 고객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역량과 기술에 집중한 기업이라면 경쟁 우위에 설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일례로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은 인텔리전트 뱅킹 투자로 고객 여정을 한눈에 파악하고 행동을 예측 분석하며, 가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고객 중심 혁신을 이어가고 있다.

금융 서비스의 다음 단계는 도구, 콘텐츠, 전문성을 다양한 접점에서 제공하며, 고객과의 관계를 거래 중심에서 적극적인 금융 라이프 파트너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산업 간 경계는 모호해지고 고객의 기대치는 점점 높아지는 디지털 경제 시대, 기업은 다각화를 위한 다각화가 아니라 확장된 고객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