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완 칼럼] '오징어 게임'서 배우는 人事의 기술
지난 추석 연휴 내내 꼼짝없이 방에서 지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당한 탓이다. 그동안 잘 피해 다녀 타고난 슈퍼 항체가 있나 보다 생각했는데 자만이었다.

혼자만의 긴 시간을 함께한 것은 넷플릭스였다. ‘수리남’ 6편을 몰아봤다.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무엇인가를 고치는 사람, 아니면 일종의 ‘해결사’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드라마를 보면서 수리남이 남미에 있는 나라 이름인 것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사실 여부를 떠나 마약 환승국으로 그려진 수리남 사람들은 기분이 썩 좋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나라 외교부 장관이 항의했다고 한다. 이 또한 ‘수리남’이 세계적으로 흥행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 싶다.

재택근무 기간 중 또 다른 한국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에미상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비영어권 작품에는 한없이 벽이 높았던 에미상 문턱을 한국 드라마가 처음으로 넘은 것이다. ‘오징어 게임’은 드라마 기술 분야 등에 수여하는 ‘크리에이티브 아츠 에미상’에서 게스트상, 시각효과상, 스턴트퍼포먼스상, 프로덕션디자인상을 수상해 올해 에미상 6관왕의 기록을 세웠다. 작품상은 비록 불발됐지만, 엄청난 성과다. ‘오징어 게임’은 수상을 못 했다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작년 9월 17일 공개된 직후 4주간 기준으로 세계 누적 시청 시간이 무려 16억5045만 시간에 달한다. 넷플릭스 사상 최고의 기록이다. 2위 흥행작과도 10억 시간 이상 차이가 난다.

성공한 영화나 드라마는 감독과 배우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게 마련이다. 이번엔 ‘에미상’이라는 큰 상의 이름 때문일까. 귀국 기자간담회 자리에 선 다른 분야 수상자에게도 눈길이 갔다. 그리고 우리나라엔 영상 관련 다른 분야도 인재가 많구나 새삼 깨달았다. 몇 달 전 한류 콘텐츠의 경쟁력을 확인한 넷플릭스 자회사가 1억달러를 투자해 한국에 아시아 최초로 특수효과 제작시설을 짓는다고 한 뉴스도 연관돼 떠올랐다.

‘오징어 게임’의 눈부신 성과는 치아가 6개나 빠질 정도로 혼신의 힘을 쏟아부은 황동혁 감독과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에게 일차적인 공이 있다. 하지만 인상적인 색상과 디테일로 눈길을 끈 세트장치, 특수효과, 스턴트맨들의 숨은 연기, 장면을 살려주는 음악들도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며 흥행에 기여했다. 예를 들어 첫 회 등장하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의 술래 인형만 봐도 그렇다. 옛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철수와 영희 일러스트를 참고해 만들었다는데, 이 장치가 없었다면 드라마 시작의 임팩트가 떨어졌을 것이다.

작품의 성공, 스타의 탄생 뒤에는 수많은 사람의 열정과 땀이 있다. ‘오징어 게임’ ‘수리남’ 같은 K드라마뿐 아니라 BTS를 필두로 전 세계인을 들썩이게 하는 K팝, 아카데미 수상작 ‘기생충’으로 대표되는 K무비도 마찬가지다. 한류 자체가 지난 수십 년간의 도전과 실패를 통해 다져진 토양에서 꽃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종합예술’이라고 불리는 영화나 드라마 제작뿐 아니라 세상일이 비슷하다. 필요한 영역에서 저마다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움직일 때 시너지가 난다. 잘나가는 기업일수록, 멀리 내다보는 기업일수록 인재 확보에 각별히 신경 쓰는 이유다. 스타급 핵심 인재뿐 아니라 필요한 각 분야에서 능력 있는 사람들이 제 몫을 할 때 성과를 내고 성장할 수 있다. 도중에 이견도 있고, 갈등도 생기겠지만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발전한다. 이 모든 것을 아울러 이끌어 가는 것이 영화 제작 현장의 감독 같은 리더의 역할임은 물론이다. 국가 경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성공이냐 실패냐는 결국 어디에 누구를 쓰느냐가 좌우한다. 리더십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