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초코파이마저…
‘잃어버린 30년’ 동안 저물가에 익숙한 일본 소비자들은 지난 4월 한 과자 제품 가격 인상을 보고 인플레이션을 실감했다. 일본에서 ‘국민 과자’로 통하는 ‘우마이봉’ 가격이 10엔에서 12엔으로 불과 2엔 올랐는데도 적잖은 쇼크를 받았다. 이 제품 가격 인상은 1979년 이후 무려 43년 만이었다. ‘맛있는 막대기’란 뜻의 우마이봉은 15가지 양념 맛으로 구성된 옥수수 과자로, 한 해 출하량이 7억 개에 이르는 장수 제품이다. 원자재값이 치솟았던 2007년에도 용량을 1g 줄이는 대신 가격은 유지했으나, 미국산 옥수수 등 원재료와 포장·운송비 부담에 결국 ‘10엔 과자’의 명맥이 무너졌다. 우마이봉을 생산하는 야오킨 관계자는 “기업 자체 노력으로 대응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고 했다.

태국의 대표적인 5개 라면 제조사 관계자들은 지난달 ‘가격 인상’ 청원서를 들고 상무부 국내사업국을 찾았다. 라면은 태국에서 저소득층의 필수품으로, 정부 승인이 있어야 가격을 올릴 수 있는 ‘통제 제품’이다. 라면 업체들은 기존 6바트(228원)에서 8바트(304원)로 33% 올려줄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태국 정부는 “밀, 팜유 등 원재료와 포장비 등 비용이 상승한 것이 확인됐지만 업체 요구를 다 들어주는 것은 지나치다”며 7바트로 1바트만 올리기로 결정했다. 태국이 라면값을 인상한 것은 15년 만이며, 그나마 이번이 세 번째다. 라면 업체들은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가운데 밀, 팜유, 연료비 내역까지 매달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전 세계적인 인플레 속에서 소비자에게 친숙한 제품의 가격 인상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급기야 한국의 국민 간식인 오리온 초코파이값도 내일(15일)부터 12.4% 오른다. 오리온은 국내 경쟁 업체들이 앞다퉈 가격을 올렸던 올초에도 초코파이 가격 인상을 자제했으나, 원가 압박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오리온 초코파이 가격이 인상되는 것은 2013년 이후 9년 만이다.

초코파이는 스토리가 참 많은 먹거리다. 군 졸병 시절 화장실에서 몰래 먹던 추억의 맛,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만났을 때 한껏 차오르는 ‘국뽕’, 베트남 제사상에도 오르는 K푸드의 한 축이다. 초코파이 가격 인상을 접하면서 이런 낭만적 기억보다는 신(新)인플레 시대의 냉엄한 현실을 절감하게 된다. 그래도 초코파이에 대해선 오래 견뎠다고 격려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