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반도체 전쟁의 생존 조건 'AI 반도체'
오늘날 첨단기술은 특정 산업의 경쟁력을 넘어 국가·경제 안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첨단기술이 반도체다. 반도체는 매일 쓰는 컴퓨터와 스마트폰뿐 아니라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등에 반드시 필요한 핵심 요소다. 현대 문명은 반도체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반도체를 둘러싼 기술 패권 경쟁도 심화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제외한 한국, 일본, 대만 등 글로벌 반도체 시장 주요 국가에 ‘칩4 동맹’을 제안했다. 지난 5월에는 한국, 일본, 호주, 인도 등 14개국이 참여하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를 결성했다. 또 68조원 규모의 재정을 투입하는 ‘반도체법(CHIPS Act)’을 제정해 세계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고 있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고 반도체 자급률 70%를 목표로 65조원 규모의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을 설립했다. 이어 아세안과 한·중·일, 호주, 뉴질랜드 등 15개국이 참여하는 ‘역내포괄자경제동반자협정(RCEP)’을 강화하려는 모양새다.

한국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64K 디램을 개발하면서 1993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 지금은 기술과 시장을 선도하는 세계적 반도체 강국으로 올라섰다. 반도체는 2021년 총수출의 19.9%를 차지하며 9년 연속 수출 1위를 달성하는 등 경제 성장을 이끌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2021년 메모리 반도체 세계 시장에서 한국 점유율은 59.1%로 1위다. 메모리반도체보다 두 배 이상 시장 규모가 큰 시스템반도체 분야 점유율은 3.0%에 불과한 상황이다.

세계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대응하고 반도체산업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선 메모리 분야의 경쟁 우위를 유지하는 한편 상대적으로 열위에 있는 시스템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대안이 필요하다. 최근 AI가 전 산업으로 확산하면서 시스템반도체 중에서도 대규모 연산을 고성능, 저전력으로 수행할 수 있는 ‘AI 반도체’가 주목받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30년에는 AI 반도체가 시스템반도체 시장의 33%를 점유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 지배적 기업이 없는 초기 단계로 시장 선점 경쟁이 치열하다. 엔비디아, 인텔, 퀄컴 등 전통적인 반도체 기업뿐 아니라 구글, 아마존, 테슬라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도 AI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사피온, 퓨리오사, 리벨리온 등에서 AI 반도체를 개발해 출시했다.

정부도 우리 기업의 AI 반도체가 안정적으로 시장에 안착하고 초기 시장을 선점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6월 ‘AI 반도체산업 성장 지원대책’을 수립했다. 특히 초기 시장 수요 창출을 위해 국산 AI 반도체로 데이터센터(NPU Farm)를 구축하고, AI 제품 및 서비스에 AI 반도체를 적용하는 ‘AI+Chip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 시장 급성장에 대비해 인력 규모를 확대하고 초격차 기술 확보를 선도할 고급 인재 양성 계획도 갖고 있다. 7월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 방향’과 8월 ‘디지털 인재 양성 종합방안’을 마련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2031년까지 반도체 인력 15만 명을 양성할 방침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인프라와 디지털 기술 경쟁력, 혁신 인재와 기업 등 우리가 승리하기 위한 재료는 모두 준비됐다. 이제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민간의 노력이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디지털 기술 패권 경쟁 속 반도체 전쟁에서 승자가 될 수 있도록 국가적 역량을 총결집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