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윤석열의 '자유'를 찾습니다
100여 일 전 취임사에서 ‘자유’를 35차례나 외친 윤석열 대통령과 비견되는 해외 지도자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다. 레이건은 1981년 1월 20일 취임식에서 “미국이 오늘의 번영을 이룬 것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유를 누린 덕분”이라며 ‘자유’를 11번 언급했다. 두 지도자가 자유의 의미와 가치를 강조한 것도 닮은꼴이었다. 윤 대통령은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의 전제조건으로 ‘자유의 가치를 제대로, 그리고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을 꼽았다.

레이건은 8년간의 임기 내내 미국 사회에 ‘자유’를 최대한 확대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여기고 실천해나갔다. 세금 감면과 규제 완화를 정책의 두 축(軸)으로 강력하게 밀어붙인 것도 ‘자유’에 대한 확고한 신념 때문이었다.

“정부가 세금을 더 많이 거둬갈수록 개인이 번 돈으로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줄어든다. 과도한 규제도 마찬가지다. 직업을 창출할 수 있는 사업을 열거나 운영하는 데 장애를 주고, 심지어 그만두게 만든다.” 그런 레이건에게 ‘제한된 정부’는 불가피한 귀결이었다. “영어에서 가장 무서운 9개 단어는 ‘I’m from the government and I’m here to help(정부에서 나왔습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이다”는 그의 말은 ‘자유’와 ‘작은 정부’가 왜 불가분의 관계인지를 가장 명쾌하게 설명한 명언으로 꼽힌다.

그런 레이건의 정책이 엄청난 성공을 거뒀음은 그가 강력한 세율 인하를 단행했음에도 취임 첫해(1981년) 5990억달러였던 연방 세수(稅收)가 임기 마지막 해(1989년)에 거의 1조달러까지 불어난 데서 단적으로 확인된다. 감세와 규제 완화를 통한 ‘자유’의 확대가 세율 인하폭을 훨씬 뛰어넘는 규모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생산을 늘린 것이다.

윤 대통령도 레이건처럼 ‘자유’의 가치를 실현해나가고 있는지에 대해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가 ‘규제개혁 1호 사업’으로 꼽았던 대형마트 영업규제 조치를 소상공인 반발을 이유로 현행 유지키로 한 엊그제 결정이 그런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대표적 장면이다. 윤석열 정부는 대형마트 규제를 국민제안 투표까지 거쳐 ‘시장 자유를 제약하는 철폐 대상 정책’으로 선정하고 규제심판회의의 ‘1호 안건’으로 올리기까지 했다. 그런 안건을 돌연 ‘없던 일’로 한 이유로 소상공인 보호를 든 핑계가 궁색하다.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대형마트로 인해 주변 전통시장의 소상공인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얘기는 그가 취임하기 전부터 계속돼 온 주장이다. 그걸 모르고 규제 철폐에 나선 게 아니었다면, 왜 갑자기 입장을 바꾼 건지 보다 솔직한 설명이 필요하다. 세간에는 윤석열 정부가 심각한 지지율 저조로 인해 벌써부터 개혁 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그게 사실인지 여부보다 더 중요한 건 윤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했던 ‘자유’의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알고는 있느냐 하는 의문이다. ‘자유’의 관점에서 본다면 대형마트 영업규제는 해당 기업의 ‘사업할 자유’와 소비자들의 ‘원하는 곳에서 구매할 자유’를 제한한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지난 6월 화물연대 소속 기사들의 집단운송거부가 장기화하자 올해 말 폐지키로 돼 있던 ‘안전운임제도’를 연장해주겠다며 백기를 든 것도 마찬가지다. 특정 화물의 화주(기업)들로 하여금 원가나 시황과 관계없이 일정액 이상의 운임을 무조건 보장해주는 안전운임제도는 당사자 간 협상의 여지를 없애는 전형적 ‘반(反)자유’ 조치다. 윤 대통령 스스로 취임 일성을 무색하게 만든 순간이었다.

“자유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킬 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시장경제를 온전하게 꽃 피우기 위해서도 자유는 치열하게 보호돼야 한다. 레이건 대통령은 집권 초기 항공관제사 노조원들이 연봉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가자 좌파 세력의 ‘정권 길들이기’ 공세가 시작됐음을 간파하고 강경하게 대응했다. 파업 노조원들에게 ‘48시간 내 업무 복귀’를 명령하고, 1만1350명이 기한 내 복귀를 거부하자 전원 해고와 함께 추후 복귀 가능성도 봉쇄했다. 레이건이 이 결정을 내리면서 참모들에게 던진 질문은 딱 한마디였다. “원칙에 맞는 일인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