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초격차, 혁신적 '기술금융'에 달려 있다
한국과 중국은 지난 30년 동안 최고의 경제 파트너였다. 그런데 지난 몇 달 동안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가 적자를 나타냈다. 이것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 대중 무역흑자 시대의 종식이라는 분석은 매우 우려스럽다. 한국은 새로운 모멘텀을 찾아야만 한다. 전문가들은 ‘초격차 기술’과 ‘글로벌 브랜드화’를 통해 차별화한 비교우위와 새로운 한·중 분업 구조를 제안한다.

초격차 기술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인공지능(AI), 반도체, 우주항공 같은 분야에 연구 역량을 집중하는 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금융’과 ‘자본’ 전략이 뒷받침돼야 한다. 네덜란드가 17세기 황금시대를 주도한 것은 근대적 주식시장과 금융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영국 런던이 18세기 세계 금융의 중심이 됐고, 산업혁명은 이런 토대 위에서 꽃을 피웠다. 미국은 철강, 석유, 전화, 상업용 발전소 등 혁신기술에 터 잡은 주식시장을 발전시켜 19세기 주도권을 쥐었다.

2014년 도입된 국내 기술금융은 작년 7월 300조원을 돌파할 정도의 양적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담보대출과 보증 같은 간접금융이 주를 이루고 직접투자는 부진하다. 금융인이 기술 이해도가 낮은 것도 문제지만 투자 관심을 이끌 만한 기술이 다양하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한국은 연구개발(R&D) 투자 비율은 세계 2위지만 그로부터 얻는 과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낮다. 따라서 향후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는 원천기술과 돈이 되는 표준특허기술에 R&D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지식재산(IP) 담보’는 기업이 보유한 지식재산권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받는 제도로, 기술력이 높은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에 유용하다. IP 담보대출액은 연간 1조원을 넘고 시중은행과 지방은행까지 참여할 정도로 발전했으나, 아직 정책금융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민간 주도의 질적 성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제 정규 담보제로 정착했음에도 해당 가치평가가 기업 재무제표에 반영되지 못한다. 특허 가치가 기업의 실질적 자산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은 19세기에 특허담보법제를 만들었고, 현재 상장기업의 40% 정도가 특허 담보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

다음으로 ‘기술특례 상장’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이 제도는 실적이 좋지 않아도 우수한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코스닥시장에 상장할 수 있도록 해주며, 특허를 상장 심사의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다. 그러나 현재 심사는 등급을 평가할 뿐 기술의 핵심인 IP에 대한 가치평가(산술적 금액)를 의무적으로 하지 않아 의미 있는 기술분석이 되지 못한다. 초격차 기술을 원한다면 IP 가치평가는 기본이 돼야 한다. 더 나아가 특허관리 전문 서비스, 특허소송금융, 디스커버리 등 새로운 서비스 등장도 기대할 수 있다.

끝으로 ‘세제’ 지원도 고민해야 한다. 특허청은 기업의 기술혁신을 장려하기 위해 ‘특허박스’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특허박스는 특허 사업화로 수익을 올린 기업의 법인세를 감면하는 제도로 아일랜드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등 유럽 15개국이 운용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법인세를 22%에서 10%로 낮춤으로써 IP 활동에 투자할 동기를 부여하고 있고, 이 제도를 도입한 국가는 그렇지 않은 국가에 비해 외국인 투자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제도 도입을 위해 제출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번번이 좌초했다. IP 사업화가 저조한 우리나라에서 비교우위가 열악한 신성장동력 분야나 장기간 투자가 필요한 원천기술 분야의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한국형 특허박스를 도입해 해당 분야 R&D 투자 확대와 매출 증대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위기 극복과 미래 성장의 관건은 초격차 기술 확보와 원활한 금융 조달에 있다. 금융을 이용한 수많은 유니콘 기업을 탄생시키려면 선도적이고 혁신적인 기술금융이 뒷받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