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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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평균 50만 가구의 주택(인허가 기준)이 공급되고 있습니다. 이번 대책은 평년보다 4만 가구가량 더 늘어나는 게 전부입니다.”

민간 주도로 서울 50만가구 공급?…첩첩 규제 안풀면 어림없다 [김진수의 8·16대책 파헤치기]
국토교통부가 지난 16일 윤석열 정부의 첫 주택 공급 대책인 ‘국민 주거안정 실현 방안’을 내놨다. 내년부터 2027년까지 5년간 인허가 기준으로 서울 50만 가구를 포함해 전국에 총 270만 가구의 주택을 공급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이번 대책은 주택시장 안정을 목표로 지역·유형·시기별 공급 계획을 담고 있다. 재건축·재개발 등 도시정비사업 규제 완화와 심의 절차 단축을 통해 전체 물량의 68%(182만 가구)를 민간이 공급하도록 하고 있다. 기존 공공 주도의 공급 기조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정책 방향만큼은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소리만 요란할 뿐 알맹이가 없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구체적인 내용은 후속 조치로 대부분 미뤄뒀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과연 매년 10만 가구씩 총 50만 가구 공급이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일각에서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총 257만 가구(추정)가 공급되는 것을 고려할 때 향후 5년간 나올 물량이 예상보다 많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아파트값이 하락하고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최근 부동산 상황을 개선할 방안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270만 가구…첫 주택 공급 대책

그래픽=전희성기자
그래픽=전희성기자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주택 공급은 단연 화두였다.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주택 시장 안정을 위해 임기 5년간 주택 250만 가구 이상을 공급하겠다”고 공약으로 발표했다. 새 정부 출범 직후 서울 50만 가구를 포함해 수도권에 130만~150만 가구를 짓는 등 전국에 250만 가구의 주택을 공급하는 로드맵을 세우겠다고 한 것. 유형별로 보면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에 47만 가구를 할당했다. 나머지는 도심·역세권 복합개발(20만 가구), 국공유지 및 차량기지 복합개발(18만 가구), 소규모 정비사업(10만 가구), 공공택지(142만 가구), 서울 상생주택 및 매입약정 민간개발(13만 가구) 등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이었다.

이처럼 주택 공급 로드맵이 필요한 이유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1~2인 가구 급증과 소득 증대에 따른 주거 수준 상향 기대 등으로 주택 수요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실제 서울 가구 수(통계청 기준)만 봐도 2018년 398만여 가구에서 2019년 404만 가구, 2020년 412만 가구, 지난해 419만 가구로 증가하고 있다.

선진국에 비해 주택 수는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인구 1000명당 주택 수(2020년 기준)는 한국이 418가구인 데 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468가구에 달한다. 도심 내 주택 노후화 등으로 증가하는 멸실 주택(2016~2020년, 62만4000가구) 대체 방안 마련도 시급한 문제로 꼽힌다.

국토부는 주택 수급 상황과 대선 공약(주택공급 로드맵)을 고려해 이른바 ‘250만+a 공급 방안’을 내놨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23∼2027년 5년간 공급 물량은 270만 가구로 연평균 54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지역별로는 수도권에 총 158만 가구를 공급한다. 지방은 광역·특별자치시에 52만 가구 등 총 112만 가구의 공급 기반을 마련한다.

사업 유형별로는 도심 내 재개발·재건축, 도심복합사업 등으로 52만 가구를 충당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내년부터 5년간 22만 가구 규모의 정비구역을 추가 지정한다. 서울은 신속통합기획으로 10만 가구, 경기·인천은 역세권과 산업시설 노후 주거지 등을 중심으로 4만 가구 규모의 정비구역 지정을 추진한다. 지방은 광역시의 쇠퇴 구도심 위주로 8만 가구를 정비구역으로 지정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3기 신도시 등 공공택지에 88만 가구가 공급된다. 이 중 내년까지 15만 가구 안팎의 후보지를 선정해 발표한다. 시세의 70% 이하로 분양하는 ‘청년원가주택’과 ‘역세권 첫 집’을 통합해 총 50만 가구를 공급하는 계획도 밝혔다.

재건축 부담금과 안전진단 규제 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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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재건축 사업 걸림돌 중 하나인 분양가 상한제 개선 방안을 지난달 내놓은 데 이어 이번에 재건축 부담금과 안전진단 규제 완화에 나섰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는 재건축 사업으로 인한 과다한 이익을 환수하기 위해 2006년 도입됐다. 추진위원회 구성 시점과 입주 시점의 평균 집값 상승분에서 각종 비용을 제외한 금액이 3000만원을 초과하면 이익 금액의 10~50%를 재건축조합으로부터 환수하는 제도다. 예정액 통보 이후 준공 시점까지 집값이 오르면 부담액도 늘어나는 구조인 만큼 정비사업 지연의 주요 이유 중 하나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국토부는 이번에 재건축초과이익환수법을 개정해 기존 3000만원인 면제 기준을 상향하고, 누진하는 부과율 구간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재건축 주택을 장기 보유한 1가구 1주택자에 대해서는 보유 기간에 따라 부담금을 감면해줄 방침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도 개선한다. 2018년 3월 안전진단 항목 중 ‘구조안전성’ 비중을 20%에서 50%로 상향하면서 도심 공급 기반이 약화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구조안전성 비중을 줄이고(30~40%) 주거환경과 설비 노후 배점을 상향할 방침이다. 정밀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을 때 시행하는 정부 기관의 ‘적정성 검토(2차 정밀안전진단)’도 지방자치단체가 요청하는 경우에만 시행하도록 할 계획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수도권에서만 40개 단지(5만2526가구)가 안전진단 단계에 머물러 있다.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아파트 단지)과 노원구 상계·중계·하계동 등 30년 이상 된 단지가 수혜 대상이다.

통합심의와 민간 도심복합사업 관심

도심 내 공급 속도를 높이기 위해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도 눈길을 끈다. 민간이 추진하는 정비사업과 도시개발사업에도 통합심의가 도입되는 게 핵심이다. 앞으로는 도시·건축·경관 심의와 교통·환경 등 각종 영향평가를 따로 받지 않아도 된다. 현재 통합심의가 임의규정인 공공정비사업과 일반주택사업은 통합심의를 의무화해 사업 속도를 높여주기로 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 도심복합사업’과 달리 민간이 도심에 복합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연내 도심복합개발법을 제정하고 총 20만 가구를 공급할 방침이다. 민간도심복합사업은 도심·역세권 등에서 토지주 3분의 2 이상이 동의하는 경우 신탁 리츠(부동산투자회사) 등 민간 전문기관이 조합을 설립하지 않고도 사업을 시행하는 방식이다. 용적률을 최대 500%까지 높여주고, 필요하면 용도·용적률·건폐율 등 도시계획 규제를 받지 않는 ‘도시혁신계획구역’을 신설해 적용하는 등 고밀 개발이 가능해진다.

국토부는 규제 완화로 주택 공급을 늘리는 ‘주택공급촉진지역’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인허가 감소 등으로 수요에 비해 공급이 줄어들거나 가용지가 많은 지역 등을 주택공급촉진지역으로 지정하는 것. 주택공급촉진지역으로 지정되면 일정 기간 조합설립 동의요건 완화, 용적률 상향, 금융지원 등 각종 혜택이 주어진다.

구체적인 실현 방안이 없어

민간 주도로 서울 50만가구 공급?…첩첩 규제 안풀면 어림없다 [김진수의 8·16대책 파헤치기]
이번 대책이 발표된 이후 대형 건설사 주가는 일제히 내림세를 보였다. 공급 확대로 일감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는 분명 주가에 호재다. 하지만 입지와 시기 등 구체적인 이행 방안이 없는 데다 계획대로 실행하는 데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릴 가능성이 높은 게 오히려 악재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

업계에서는 거창한 청사진만 제시하고 실행 방안이 미뤄진 게 아쉽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도심복합사업에 과연 민간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할지 미지수다. 민간 참여를 유도할 구체적인 인센티브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주택공급촉진지역도 투기 수요 유발 가능성과 특혜 등 부작용을 우려해 연구용역과 지자체 및 전문가 의견수렴 등을 거쳐 내년 1분기 도입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공급 기준이 착공이 아니라 인허가라는 점도 문제다. 착공은 당장 공급으로 이어지지만 업체가 인허가 뒤 공급을 미루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최근 5년간 승인한 공공임대주택의 약 28%(2만6066가구)는 착공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부동산 침체를 타개할 만한 내용이 빠졌다는 점 역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올 들어 금리 인상과 아파트 가격 하락이 맞물려 매물이 늘고 거래는 이뤄지지 않는 ‘거래 절벽’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대구 등 지방은 입주 물량 증가 등 공급 과잉 여파로 미분양 물량이 쌓이고 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중장기적인 공급 확대 방안이 최근 벌어지고 있는 거래 절벽과 가격 하락 현상을 고착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 개정도 넘어야 할 산이다. 이번 대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개정(혹은 제정)이 필요한 법안이 열 개에 달한다. 국토부가 자체적으로 개정이 가능한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등은 제외한 수치다. 구체적으로 도시정비법, 공공주택특별법, 도시개발법, 소규모정비법, 주택법, 민간임대특별법, 재건축초과이익환수법 등의 개정이 필요하다. 국토부는 관련 법 개정은 연내 의원 발의로 추진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입법 개정 사항이 많아 여소야대인 국회에서 법 개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서울 50만 가구 공급은 글쎄…

업계에서는 수도권 중에서도 서울에서 매년 안정적인 공급이 이뤄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서울 공급 부족은 인근 경기와 인천 지역 부동산 시장 불안을 야기한다. 서울 시장 상황이 주택 시장의 향배를 가르는 바로미터라는 얘기다.

정부는 서울에 2023년부터 매년 10만 가구씩 5년간 50만 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최근 5년간(2018~2022년) 공급 물량(32만 가구)보다 56.5% 많은 규모다. 사업 유형별로 보면 정비사업이 24만 가구이고, 나머지는 공공택지와 일반주택사업 등에서 나온다. 전체 물량의 절반가량을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이 담당하는 셈이다.

그동안 서울에서는 재건축 부담금, 안전진단, 분양가 규제에 묶여 정비사업이 제자리걸음이었다. 서울 주택 공급의 절반을 차지해 온 아파트 입주 물량이 2020년 4만9525가구에서 지난해 3만2689가구, 올해 2만2092가구(예상)로 매년 1만 가구 넘게 줄어드는 것도 이 같은 규제 때문이다. 앞으로 정비사업이 활성화될 수 있을까.

분양가는 여전히 걸림돌이라는 지적이다. 서울 강남·서초·용산 등 18개 구 309개 동과 경기 3개 시(광명·하남·과천) 13개 동이 분양가상한제 적용 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이들 지역에선 택지비, 건축비, 가산비를 반영해 분양가를 통상 주변 시세의 60~80% 선에서 책정한다. 국토부는 지난 6월 정비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거 이전비, 명도소송비 등을 분양가에 반영하고, 코로나19 등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차질을 고려해 레미콘 철근 등 자재비 급등분을 일부 반영하도록 하는 ‘분양가 제도 운용 합리화 방안’을 내놨다. 이 방안을 적용하면 분양 가격이 1.5~4% 오를 것이라는 게 정부의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최근 1년 새 철근 등 건자재와 현장 인건비가 15% 이상 오른 만큼 공사비 상승을 반영해 분양가를 대폭 올리거나 상한제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세보다 크게 낮게 책정되는 분양가 규제가 존재하는 한 서울에서 민간 공급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업계에선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완화 방안을 두고도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국토부는 법률 개정 사항이어서 방향성만 제시한 것이라고 항변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빠져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사업계획승인 단계에서 재건축 부담금 예정 금액이 통보된 단지는 전국 83곳이다. 이 중 지난달 예정액이 통보된 서울 용산구 이촌동 한강맨션은 재건축 부담금이 가구당 7억7000만원으로 가장 많다. 업계에서는 “과다한 부담금 책정이 재건축 사업을 위축·지연시킨다”며 여전히 대폭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안전진단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는 크지만 5년 내 공급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극히 낮다.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려면 기본계획 수립, 안전진단 통과, 정비계획 수립 및 정비구역 지정이 선행돼야 한다. 이어 추진위원회 구성과 승인 이후 총회를 열어 조합을 설립한다. 사업시행인가, 시공사 선정, 관리처분계획 수립 및 인가, 분양 신청, 이주, 철거, 착공 순서로 사업이 진행된다. 안전진단은 재건축 사업 초기인 준비 단계로 보면 된다. 한 대형 건설사 도시정비 임원은 “도시정비 규제 완화는 도심에 주택을 공급할 기반을 마련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며 “가격 하락기에 규제를 철폐하면 민간이 수요에 맞게 공급을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진수 부동산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