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또 '반지하 참사'…규제강화가 능사 아니다
서울 신림동의 한 다세대주택 반지하에 살던 일가족 3명이 지난 8일 쏟아진 한밤의 기습폭우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또 벌어졌다. 이웃들과 소방당국이 구조에 나섰지만 숨이 이미 멎은 뒤였다.

해마다 폭우가 쏟아지는 여름철이면 반지하 주택 거주자들의 비극적 소식이 끊기질 않는다. 가깝게는 지난해 태풍 오마이스의 영향으로 부산·울산 등 남부지방의 반지하 주택·가게 침수 피해가 잇따랐고, 멀게는 2001년 7월 집중호우로 서울 동대문구, 강서구, 양천구 등에서 반지하 가구들이 빗물에 잠겼다. 올해도 하루 새 400㎜에 가까운 폭우가 쏟아지면서 수난이 반복됐다.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주제가 있다. “반지하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서울시는 10일 ‘지하·반지하 거주 가구를 위한 안전대책’을 내놓고 “지하·반지하의 ‘주거 목적의 용도’는 전면 불허하도록 정부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상습 침수구역에 반지하 주택 건설을 불허했던 2012년 건축법 개정을 넘어 모든 지역에서 반지하 주택을 금한다는 파격 대책이다. 기존 반지하 주택도 주거가 아닌 다른 용도로 전환하도록 유도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하지만 먼저 짚어야 할 게 있다. 다양한 인과관계가 얽힌 주택 시장의 작동 원리다. 반지하가 생겨난 근본 원인은 부족한 주택 공급과 층수 제한 구조에 있다. 주택은 부족한데 건축법상 층수 제한이 있으니 생기는 필연적 결과물이라는 얘기다. 전국 반지하 주택 분포가 이를 말해준다.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반지하 가구의 98.4%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지방으로 가면 반지하 주택은 찾아볼 수 없다. 충남과 전북의 전체 주택 유형 중 반지하가 차지하는 비율은 0%다.

시장을 거스르는 규제가 아니라 시장 원리를 활용하는 묘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수도권에 충분한 주택을 공급하는 게 장기적이고도 근본적인 대책이겠지만,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학계에선 “반지하 공간을 없앨 경우 건물주에게 층수 제한을 완화해주는 방법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규제가 아닌 규제 완화가 외려 해결책이 되는 셈이다.

반지하는 1980년대 수도권 과밀화의 시작이 불러온 아픈 주택사다. 좁고 습한 공간이라도 들어가 살아야 하는 ‘경제 사정’과 주택 시장이 만나 생겨난 것이다. 무턱대고 없앨 경우 되레 서민들의 주거권이 박탈될 수도 있다. 시장 속에서 해답을 찾는 일이 보다 현명하게 반지하를 역사 속으로 흘려보내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