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고전하는 삼성 스포츠
프로야구 팬들 사이에서 한화 이글스 팬은 ‘보살’로 불린다. 보살의 인내심이 없고서야 프로야구 ‘흑역사’ 기록의 대부분을 가진 한화 팀을 계속 응원할 수 있겠나 해서다. 한화는 최근 13년간 일곱 번 꼴찌를 했다. 한국프로야구(KBO) 연패 최다 타이기록(18연패)에 이어 올해는 3년 연속 10연패라는 진기록까지 세웠다. 만년 꼴찌팀을 해체·매각하지 않고 계속 운영하는 김승연 회장은 야구계에서도 ‘의리남’으로 통한다.

올해 한화 팬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공감하는 사람들은 삼성 라이온즈 팬일 것이다. 라이온즈는 창단 40년 역사상 최장인 13연패의 수모를 겪었다. 감독마저 시즌 도중에 전격 사임했다. 팀 순위는 꼴찌 한화 다음인 9위로까지 처졌다. 2000년대 들어서만 일곱 차례나 우승한 명문 라이온즈는 어쩌다 하위권이 익숙한 신세가 됐다.

프로 스포츠 명가 삼성의 자존심이 구겨진 것은 비단 야구뿐만이 아니다. 국내외 대회에서 총 24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프로축구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현재 12개 팀 중 10위로, 2부 리그 강등 위기에 처해 있다. 프로배구 V리그가 출범한 2005년 이후 11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올라 그중 여덟 차례 정상을 차지한 전설의 배구팀 삼성화재는 이제 플레이오프에서 자취를 감췄다. 프로농구 서울 삼성 썬더스는 지난해 시즌 최하위로까지 추락했다.

리즈 시절 삼성은 질시의 대상이었다. 프로 스포츠계를 평정한 것은 물론 그룹 이미지 차원에서 손해를 감수하고 4대 프로 스포츠의 스폰서도 도맡아 했다. 2005년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이 프로 스포츠 후원의 삼성 독점을 문제 삼은 뒤 스폰서를 모두 철회했다. 스포츠 마케팅 축소와 함께 2015년 삼성전자 중심의 삼성 라이온즈 지분을 제일기획으로 이전한 것을 계기로 스포츠 구단들에 대한 지원도 줄인 탓에 오늘날과 같은 부진한 성적표를 받게 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야구단 성적에 대해 “13연패는 너무 심한 것 아니냐”며 안타까운 심정을 임원에게 토로했다고 한다. 이 기사에 대해 “야구·축구단 지원을 강화해 달라”는 취지의 온라인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국민과 임직원들이 대기업 총수에게 바라는 것은 기업 실적만이 아니다. 오늘도 관중석에서 ‘최강 삼성’을 목청껏 외치는 야구팬들이 이 부회장을 바라보고 있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