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튤립 버블 vs 가상자산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버블 당시, 튤립 뿌리 한 개로 집 한 채를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 한때 1비트코인 가격이 8000만원을 넘기도 했으니, 많은 사람이 가상자산 가격 폭등을 튤립 버블에 비유하며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것이 이해된다. 일부에서는 가상자산과 블록체인에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며 혁신적인 투자 대상이라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최근에는 한국인이 대표로 있는 회사가 발행해 ‘김치코인’으로 분류되는 가상자산 테라와 루나가 폭락하며 세계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가상자산에는 이렇듯 비관론, 희망, 파문이 뒤섞여 있다.

가상자산을 둘러싼 여러 문제가 대두되는 이유로는 가상자산에 대한 가격 발견 기능이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과 투자자 보호를 위한 장치가 부족하다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가상자산을 처음 발행(ICO)하거나 가상자산거래소에 상장할 때 가격을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체계가 정비되지 않은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또 외부 전문가의 검증을 거친 주기적인 공시가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다. 반면, 필자가 한평생 몸담은 자본시장은 가격 발견과 투자자 보호에 최적화된 시장이다. 주식, 파생상품 등 금융투자상품 발행과 거래에서 지난 100여 년간 드러난 문제를 계속 보완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국제증권협회협의회(ICSA) 총회에 참석했을 때도 전 세계 자본시장 전문가들이 가상자산의 자본시장 편입을 심도 있게 논의하는 것을 봤다. 해외 전문가들은 자본시장 수준의 충분한 제도적 장치를 갖춘다면 가상자산도 위험 관리가 가능한 자산이라고 판단하고 있었으며, 가상자산의 엄청난 잠재력에 주목하고 있었다. 또한 가상자산을 기초로 하는 파생상품이나 펀드도 등장하는 등 가상자산을 보다 안전하게 제도권 자본시장으로 편입시키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도 가상자산 규제체계를 정비해 제도권으로 들여오고자 하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국회에도 여러 법안이 계류 중이다. 가상자산과 관련해 다양한 부분이 자본시장의 노하우를 받아들여 투자자에게 안전하고 효율적인 투자자산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그 과정에서 증권회사와 자산운용사들이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마침 내년 6월에는 서울에서 ICSA 총회가 열릴 예정이다. 그 자리에서 가상자산에 대한 한국의 준비 상황을 멋지게 발표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가상자산은 21세기판 디지털 튤립일까. 아니면 기술과 금융이 조화를 이룬 새로운 자산일까. 지금으로선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준비하는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