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근의 사이언스 월드] '한국 과학계 저효율' 극복 방법은
한국 과학계에는 전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연구비가 투입되고 있다. 2021년 통계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4.81%다. 지난 5년 동안 10조3000억원 증가해서 올해는 총 29조8000억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과학계가 여기에 걸맞은 연구성과를 올리고 있을까.

2020년 네이처지에서 세계 15개국 연구성과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연구 효율성은 세계 꼴찌 수준이다. 그냥 꼴찌가 아니고, 영국의 4분의 1, 미국과 중국의 절반(2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쉽게 이야기해서 같은 논문을 쓰더라도 우리나라는 영국 대비 4배의 돈과 학생·연구원을 투입한다는 것이다.

왜 이런 구조적 문제가 발생하는 것일까. 대규모 투자만 할 뿐 효율성과 혁신성은 뒷전이기 때문이다. 적정연구비를 고려하지 않고, 돈을 소나기로 뿌려대는 격이다. 과학의 혁신은 이렇게 해서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2012년부터 2020년까지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 그룹리더 그리고 부단장으로 일했다. 이 기간에 IBS 전체(단장과 부단장 그룹)를 통틀어 가장 좋은 연구실적을 올린 그룹 중 하나였다. 세계 최초로 자성반데르발스 연구라는 독창적인 연구 분야를 개척했다.

IBS는 적정연구비라는 개념 없이 그냥 물량 투입을 하고 좋은 연구를 기대하는 일종의 ‘인디언 기우제’식 투자를 했다. 우리나라 물리학계 대략 2000명의 박사급 연구원의 돈줄인 연구재단 물리 분야 연구비가 매년 1000억원을 조금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IBS에서는 물리 분야에 대략 800억원을 매년 10명 정도의 단장에게 주고 있다. 시작부터 불균형이다.
[박제근의 사이언스 월드] '한국 과학계 저효율' 극복 방법은

英보다 4배 투자…효율성은 꼴찌

이런 비판이 나오면 IBS에서 상투적으로 내놓는 지표가 ‘좋은 저널에 논문이 많이 실렸다’는 것이다. 아니, 우리나라 최고의 학생이 있는 기관에서 매년 평균 80억원의 연구비를 받으면서 내놓는 지표치고는 참 치졸하다. 나는 IBS 부단장으로 매년 10억원이 조금 넘는 연구비를 받아 지난 5년간 네이처지에 세 편의 논문을 썼다. 하지만 이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아무도 하지 않는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게다가 IBS는 외국 석학들의 입을 빌려 궁색한 논리를 보완하고 있다. 아니, 남의 나라에서 연구자에게 기초과학연구비를 늘리겠다는데 누가 대놓고 반대하겠는가? 게다가 자신들이 낸 세금도 아닌데 말이다. 문제의 핵심은 연구자의 연구역량에 걸맞은 적정연구비와 학생·연구원 투입이다. IBS는 국내 과학계 속사정을 모르는 외국 석학들이 한 지극히 원론적인 이야기를 아전인수격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30~40대 연구자 혁신그룹 육성을

IBS에서 9년 동안 연구에만 매달리며 보고, 겪은 경험으로 나는 IBS를 폐지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누군가는 ‘너는 IBS에서 연구의 꽃길(?)을 누려 놓고 이런 소리를 한다’고 비난할지 모른다. 만일 공론장이 열린다면 언제든지 내 경험과 생각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다.

만일 폐지가 불가능하다면 먼저 단장들의 연구비와 권한을 비슷한 업적을 내는 글로벌 학자들의 평균치로 대폭 조정해야 한다. 남는 예산으로 능력 있고, 도전정신이 충만하며, 실패할 각오가 돼 있는 30~40대 연구자들을 혁신그룹으로 키워야 한다. IBS 물리분과 예산만으로도 이런 혁신그룹을 80개 이상 만들 수 있다.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스라엘 바이츠만 과학연구소가 바로 대표적이다. 바이츠만 연구소는 작은 규모 연구기관 세계 평가에서 늘 1등을 하는 놀라운 연구기관이다.

이제는 과학계가 냉정하게 IBS의 지난 10년 실적을 놓고 어떻게 개혁해야 할지를 공개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시대정신인 공정의 가치에도 위배되는 특정 몇 명에게 엄청난 돈을 퍼부을지, 아니면 대대적인 수술을 해서 젊은 연구자 중심의 혁신성으로 똘똘 뭉친 작지만 강한 연구그룹을 키울지 과학계가 답을 내놓아야 한다.

박제근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