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자화상에 숨겨진 비밀들
빈센트 반 고흐는 너무 가난해서 모델 쓸 돈이 없었다. 성격장애와 조울증 때문에 남과 어울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자기 얼굴을 많이 그릴 수밖에 없었다. 자화상 속의 그는 깡마른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하다. 그런데 말년의 자화상 한 점은 수염이 없고 색감도 온화하다. 이 그림은 어머니 생신 선물용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그는 “저 아프지 않고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라는 말을 자화상으로 대신했다.

이 말끔한 자화상 직전에 그는 붕대로 감은 얼굴을 그렸다. 이 작품엔 자신을 묘사한 폴 고갱의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 크게 다투고 정신발작으로 귀를 자른 뒤의 심리상태가 오롯이 드러나 있다. 화가의 자화상에는 이처럼 굴곡진 생애와 시대 배경, 사랑과 분노 등 내밀한 얘기들이 함축돼 있다.

최근 고흐의 미공개 자화상이 다른 그림 ‘농부 여인의 초상’ 뒷면에서 발견돼 화제를 모았다. 챙 넓은 모자에 목도리를 두른 그의 모습이 X-레이 촬영 중에 드러난 것이다. 돈을 아끼려고 캔버스를 뒤집어 재사용했기에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모습이어서 마음이 짠하다.

화가들의 자화상은 대부분 어둡다. 프란시스코 고야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입을 앙다물고 있다. 오른쪽 얼굴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여기엔 콜레라로 고열에 시달리다 청력을 잃은 그의 고통이 투영돼 있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유명한 자화상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그린 것이다. 프랑스혁명 중 로베스피에르를 추종하다 실권하고 방황할 때였다. 그의 눈빛에서 당혹감이 느껴진다. 시인이기도 한 윌리엄 블레이크는 외모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꽃미남 자화상’을 남겼다. 천재 화가일수록 이상과 현실의 갈등을 많이 겪고 이를 자화상에 반영했다.

‘빛과 어둠의 마술사’ 렘브란트는 역사화 속의 인물을 더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자화상을 70점 이상 그렸다. 인상파 화가 에드가르 드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하려고 합승마차를 애용하면서 “서로를 바라보기 위해 태어난 것, 그것이 인간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그의 말마따나 우리 얼굴은 타인의 표상이자 나의 거울이다. “모든 화가는 자신을 그린다”는 르네상스 격언이 여기에서 나왔다. 지금도 누군가 우리 곁에서 자기 내면의 깊은 곳에 영혼의 렌즈를 들이대고 있겠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