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에 ‘횡재세’를 걷으려는 정치권의 움직임이 가관이다. 박홍근 원내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고통 분담’ ‘초과이익 환수’ 등으로 분위기를 띄운 지 얼마 안돼 관련 법안이 제출되는 등 일사천리다. 같은 당 이장섭 의원은 정부가 탄력세율로 세금을 인하하는 경우 정유사 등에 세율 조정 전후 국내 도매가격(원가) 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교통에너지환경세법’ 개정안을 그제 대표발의했다. 횡재세 법안도 조만간 나올 전망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혼자만 배 불리려 해선 안 된다”고 하는 등 ‘정유사 팔 비틀기’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유가 급등으로 장부상 평가이익이 일시적으로 급증한 정유사에 원가 공개와 함께 횡재세를 물리겠다니 대한민국이 자유시장경제 체제인지 헷갈릴 정도다. 반(反)시장적·포퓰리즘적인 횡재세 발상은 서민 고통 원인과 불만을 기업에 떠넘기려는 시도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가 올 1분기에 역대 최대 영업이익(4조7600억여원)을 냈지만, 이 중 40%가량은 재고 평가이익으로 실제 수익이 아니다. 더구나 유가가 하락세로 돌아선 만큼 언제 평가손실로 바뀔지 모른다. 이런데도 초과이익 운운하며 세금을 때린다니, 적자가 날 땐 메워줄 것인지 묻고 싶다. 유가 폭락으로 국내 정유사가 5조원대 적자를 내며 벼랑 끝에 몰렸던 게 불과 2년 전이다. 당시엔 정부도 정치권도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정유사가 ‘떼돈’을 벌었다고 하지만, 영업이익률은 10% 수준이어서 이익률이 훨씬 높은 다른 기업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일각에서 해외 사례를 거론하지만 같은 잣대를 들이대선 곤란하다.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엑슨모빌 같은 영국과 미국 석유 메이저는 자체 유전에서 석유·가스를 생산해 정제도 하기 때문에 유가가 치솟으면 대박이 난다. 정제마진에 의존하는 국내 정유사와는 이익 구조가 다르다. 미국에서도 가격 통제 시도는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는 기름값 인하를 압박한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해 “기본적인 시장 역학에 대해 매우 잘못 알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내 기름값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은 국제 유가와 유류세다. 기름값을 낮추려면 유류세 인하 폭을 키우거나 현장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이익이 늘수록 세금을 더 내야 한다면 정유사들은 생산·투자를 줄이려 할 것이고, 이는 다시 기름값을 올리는 악순환을 부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