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미국 분열시킨 연방대법원
지난달 30일 미국 대법관으로 취임한 커탄지 브라운 잭슨. 최초의 흑인 여성 대법관이자 사상 첫 국선 변호인 출신 대법관이다. 잭슨 대법관이 합류하면서 미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4명의 여성 대법관이 한꺼번에 일하게 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미국의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미국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또 다른 한 걸음을 내디뎠다”고 평가했다.

잭슨 대법관은 각종 유리천장을 깨며 임명됐지만 깨지 못한 기록이 있다. 바로 ‘4050’ 원칙이다. 미국 대법관은 모두 40대나 50대 초반 때 임명되는 불문율이 있다. 잭슨 대법관은 52세이며 2020년 임명된 코니 배럿 대법관의 당시 나이는 48세였다. 닐 고서치 대법관과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은 지명 때 49세였다. 9명의 현직 대법관 중 취임 시점에 최연장자는 55세 때 지명된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이다.
장수하는 미국 대법관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민주당 출신이든 공화당 출신이든 예외가 없었다. 모두 젊은 대법관을 선호했다. 산더미 같은 재판 기록을 쉼없이 읽어야 하는 체력적인 이유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각 당의 정치적 지향점을 위해 오래 일할 수 있는 대법관이 필요해서다.

미국 대법관의 임기는 따로 없다.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보장받기 위해서다. 자진 사퇴하지 않으면 사망 때까지 일할 수 있다. 평균 수명 증가로 수십년간 대법관으로 재직하는 게 일상이 됐다. 1991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임명한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43세 때 임기를 시작해 31년째 현직을 유지하고 있다. 2005년 임명된 존 로버츠 대법원장도 17년 넘게 대법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대법관 4명이 잇따라 물갈이된 2018년 이전까지 대법관의 평균 근속 기간은 늘 20년이 넘었다.

근속 연수가 길어지면서 대법관으로 등용되는 절대 인원수는 감소하고 있다. 대법원이 현재 구성을 갖춘 1869년부터 1969년까지 60명의 대법관이 지명됐다. 이에 비해 1917년부터 2017년까지 대법관으로 등용된 인원은 47명으로 감소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올리버와이먼은 2018년 이후 100년간 전체 대법관 수는 25명으로 급감할 것으로 예상했다.
부메랑 된 종신근무제
대법관의 재임 기간이 늘면서 미국 대통령이 새 대법관을 지명하는 기회도 줄고 있다. 대부분의 대통령이 본인 임기 동안 1~2명 정도의 대법관만 임명한다. 1977년 당선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한 번도 대법관을 지명하지 못했다. 반대로 1968년 취임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4명의 대법관을 지명했다.

대통령마다 임명하는 대법관 수는 ‘복불복’이었지만 그래도 보수와 진보 균형은 맞춰졌다. 중도 성향의 대법관이 1~2명 들어가거나 보수와 진보가 4명씩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대법원장이 캐스팅보트를 쥐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꺼번에 대법관 3명을 보수 성향 인사로 교체한 뒤 상황이 달라졌다.

보수 대 진보 대법관 수가 6 대 3으로 균형이 깨졌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대법원은 사회적 파장이 큰 판결을 잇따라 내리고 있다. 낙태권을 박탈하고 총기 규제를 무력화한 데 이어 온실가스 규제도 멈춰 세웠다. 이어 피임과 동성애, 동성결혼 판례도 재검토하겠다고 선언했다. 데이비드 피셔바움 컨설턴트는 “미국 건국자들이 대법원을 설계할 당시 상상하지 못한 결과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