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 문재인 정부의 무리한 탄소 감축 정책 후폭풍이 산업계를 덮치고 있다.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줄여야 하지만, 지난해 국내 제조업체의 배출량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탄소 저감 기술 개발이 요원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할당량을 맞추기 위해 조업을 단축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했으니 복합 경제위기 속에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탄소중립 정책은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막판에 급피치를 올릴 때부터 심각한 후유증이 예견됐다. 산업계의 우려와 반대에도 ‘탄소중립기본법’은 작년 8월 국회를 통과해 올 3월 시행에 들어갔다. ‘다음, 다다음 정권에까지 폭탄을 던진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문 전 대통령은 작년 11월엔 영국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2050 탄소중립 계획’을 발표하고 생색을 냈지만, 덤터기는 고스란히 기업들이 뒤집어쓰고 있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단시간 내에 의미 있는 탄소 감축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었다. 탈원전 정책 아래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려 탄소 제로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허황한 것이었다. 문제는 잘못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는 점이다. 철강·화학·시멘트 3개 업종에서만 탄소중립 비용으로 2050년까지 최소 400조원을 쏟아부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니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탄소 제로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하나뿐이다. 전 정부가 억지로 꿰맞춘 탄소중립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속도 조절에 나서는 것이다. 유럽은 에너지난이 심해지자 석탄화력 쪽으로 다시 눈을 돌리고 있다. 독일은 유휴 석탄화력발전소를 2년 동안 한시적으로 재가동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오스트리아와 네덜란드도 석탄발전 재가동을 선언했다.

일각에서 국제 사회에 천명한 약속 번복에 따른 신뢰도 하락 등을 거론하고 있지만, 한국이 그 약속을 지킨다고 알아줄 국가도 없다. 미국은 2017년 파리협정에서 탈퇴했다가 2021년 재가입했다. 일본 러시아 캐나다 뉴질랜드 등은 교토의정서에 참여하면서 한동안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출하지 않고 버티기도 했다. 중국과 인도는 자국 여건에 맞춰 탄소중립 달성 시기를 각각 2060년과 2070년으로 늦춰 잡았다. 원전 활용을 크게 늘리고 탄소 감축 기술 개발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 탄소 제로 달성 시기를 늦추는 등 탄소중립 정책의 방향과 속도를 과감히 수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