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한국 샐러리맨에 더 가혹한 인플레
윤석열 대통령의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을 언제 어디서든 화폐량이 생산량보다 급속히 증가할 때 발생하는 ‘화폐적 현상’이라고 규정했다. 인플레이션은 화폐 증발 등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기인할 때가 많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몇몇 이유로 오히려 정부 재원을 증대시킨다고도 했다.

우선 정부 부채의 일부가 폐기된다고 했다. 미래 물가 상승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이자율로 발행된 정부 부채 실질 가치가 인플레이션으로 감소한다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이유로는 ‘자동적 계층 승급’을 꼽았다. 실질소득은 그대로라도 인플레이션으로 명목소득이 높아져 개인이 더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 소득계층에 편입되는 현상이다. 인플레이션이 유발하는 사실상의 증세를 지칭하는 용어다.

미국은 물가 반영해 과표 조정

이런 현상은 한국 샐러리맨을 보면 아주 잘 이해된다. 2008년 이후 15년째 소득세 과세표준(과표)이 그대로 유지(1200만원 이하 세율 6%, 4600만원 이하 15%, 8800만원 이하 24%)되다 보니 세금이 임금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인 이상 사업체 근로자의 월 임금은 2016년 310만5000원에서 2021년 365만3000원으로 17.6% 올랐다. 반면 근로소득세는 같은 기간 10만2740원에서 17만5260원으로 70.6% 상승했다. 소득세가 월급의 네 배 빠른 속도로 늘었다.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은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일찍부터 ‘물가연동 소득세제’를 도입했다. 물가 상승분의 전부 또는 일부가 일정 공식으로 세금 산출에 자동 반영되는 제도다. 한국처럼 정부가 장기간 ‘재량적 과표 조정’을 하지 않아도 매년 물가 변동에 따른 근로자의 실질 세 부담 변화를 줄여주는 제도다.

특히 미국은 물가 상승분을 거의 제거하는 연동제를 운용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5년부터 매년 소비자물가지수를 반영한 생계비지수를 기준으로 과표 구간 및 일부 소득공제액을 인상한다. 미국이 한국과 달리 2008년부터 작년까지 하위 세 개의 소득세 과표 구간 상한선(부부합산신고자 기준)을 각각 1만6050달러, 6만5100달러, 13만1450달러에서 1만9900달러, 8만1050달러, 17만2750달러로 23~31%씩 높인 기반이다. 미국은 소득공제항목인 표준공제 금액도 같은 기간 1만900달러에서 2만5100달러로 인상했다.

물가연동세제 도입 검토할 때

윤석열 정부는 최근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 적극적 감세 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법인세율 3%포인트 인하, 종합부동산세 부담 완화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소득세 분야는 별다른 감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재정 기조를 건전재정으로 전면 전환한 마당에 소득세마저 감세하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지금처럼 낡은 소득세 과표를 계속 방치하면 올해부터 부작용이 더 커질 것이 확실시된다. 인플레이션이 심화하고 있어서다. 향후 한국 근로자의 실질 세 부담 증가는 지난 10여 년간의 저물가 시대에 비해서는 물론 미국 등 물가연동제 국가 근로자보다 훨씬 커질 게 분명하다.

조세당국은 이제 소득세 과표 인상을 고려할 때가 됐다. 세수 급감 및 재정 악화 우려에 큰 폭 인상이 어렵다면, 물가연동제라도 도입해 매년 조금씩이나마 실질 세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가뜩이나 ‘봉’이라 불리는 유리지갑 월급쟁이들을 인플레이션 시대에 더 큰 봉으로 만들 순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