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대혁명 직후 프랑스에선 시간과 달력이 확 바뀌었다. 1793년 십진법을 기반으로 제정된 새 달력은 한 달이 30일, 한 주가 10일로 매달이 일수의 차이 없이 ‘평등하게’ 짜였다. 하루는 10시간, 한 시간은 100분, 1분은 100초로 통일됐다. 들쑥날쑥한 ‘자연의 법칙’은 인간이 만든 규격에 욱여넣어졌다. 각 달에는 ‘제르미날(싹이 트는 달)’ ‘방데미에르(포도 수확의 달)’ ‘테르미도르(뜨거운 달)’ 같은 목가적인 이름이 붙었다.

이분법에 발목 잡힌 시장

시간도 칼 자르듯 했던 혁명 세력은 사회도 ‘덕(德)의 공화국’과 ‘인민의 적’으로 양분했다. 1794년 방토즈(바람의 달) 8일 강경파 혁명가 생쥐스트는 “조국의 적은 재산을 소유할 수 없고, 애국파의 재산은 신성하다”며 ‘혁명의 적’의 재산을 몰수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부자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애국자’에게 분배한다는 소위 ‘풍월(風月)의 법’이 발동된 것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하나의 토지, 하나의 작은 작업장, 하나의 상점을 소유하는’ 소생산자의 사회를 꿈꿨던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는 같은 해 프레리알(목초지의 풀이 자라는 달) 22일 ‘대공포 정치법’을 동원했다.

반대파를 비도덕적 적폐로 몰아 변호권을 완전 박탈하고, 재판소엔 석방과 사형 중 양자택일을 강요한 ‘공포정치’가 시작되면서 법 제정 45일 만에 1286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진보’를 표방하는 이들이 이끌었던 프랑스 혁명의 실상은 ‘중세 이단 재판’과 다를 게 없었다.

낡은 역사 속 한 장면을 굳이 들춰낸 것은 지난 21일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첫 부동산 대책인 ‘임대차시장 안정 방안’에서 기괴했던 혁명기 프랑스가 연상되는 장면이 적잖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내놓은 전셋값 안정 대책은 여소야대 현실 탓에 부동산 시장 불안을 야기한 ‘임대차 3법’에 손대지 못하면서 기형적인 모습을 띨 수밖에 없었다.

임대차 3법 철폐라는 근본 해결책을 도외시한 채 그저 전셋값을 5% 이내로 올리는 ‘착한 임대인’에게 1가구 1주택자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주거나 장기보유 특별공제 시 ‘2년 거주’ 요건 면제를 해주는 등의 지엽적인 대책만 내놨을 뿐이다. 주택 소유자 혹은 다주택자를 악(惡)으로 바라보고,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의 법칙보다는 ‘집은 거주의 공간이며 1가구 1주택이 지향할 모범’이라는 허울뿐인 이상주의를 앞세웠던 전 정부가 구축한 족쇄는 여전히 강고했다.

공교롭게도 부족한 점 투성이인 정부의 전셋값 대책이 발표된 날 한국형 로켓 ‘누리호’ 발사가 성공했다. 자력으로 1t급 위성을 쏘아 올리며 한국은 ‘7대 우주 강국’ 반열에 올라섰다. 연구진과 300여 개 국내 협력 업체가 지난해 궤도 안착 실패, 올해 두 차례의 발사 연기 끝에 얻은 ‘땀과 눈물’의 결실이었다.

'구체제' 굴레 떨친 누리호

지지부진을 면치 못해 갑갑함만 유발하는 경제·사회 영역과 달리,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한국 과학계가 선사한 것이기도 하다. 아마도 물리와 전기의 법칙에 따라 작동하고, 수치와 데이터가 결정하는 과학 기술 개발의 영역엔 비현실적인 선과 악의 이분법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던 덕이 클 것이다.

굉음과 함께 힘차게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 누리호의 모습은 하나의 상징처럼 다가온다. 이제라도 허울뿐인 도덕의식, 시대착오적 이분법의 굴레를 과감하게 떨쳐야 한다는 시대정신이 비약(飛躍)하는 로켓에 투사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