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금감원장은 뭘 하는 자리인가
1999년 초 출범한 금융감독원의 영문명은 FSS다. Financial Supervisory Service의 앞 글자를 딴 이름이다. 이를 우리말로 바꾸면 금융감독서비스(원) 정도가 된다. 감독기관인데 왜 서비스라는 단어가 들어갔을까. 외환위기 당시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 등 4개 금융감독기관 통합을 논의하면서 미국과 영국 등 금융 선진국을 벤치마킹하자는 차원이었다고 한다.

외환위기 당시까지 선진국과 한국의 금융감독은 뭐가 달랐을까. 한국의 감독기관들이 금융권에서 각종 사고나 불법 행위가 발생하면 이를 조사해 처리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선진국 감독기관들은 위기와 사고 예방에 주력하는 것으로 이미 목표를 바꿨다. 감독당국은 위기나 사고 가능성을 스크린하고 있다가 징후가 보이면 금융회사들에 알려줬는데 한국도 이를 해보자는 차원에서 ‘서비스’라는 단어를 넣었다. 1998년까지 존재한 은행감독원의 영문이름은 Office of Bank Supervision이었다.

금융이 어느 정도 발달한 국가에서 감독기관들이 하나같이 내세우는 목표는 건전성 관리다. 건전성은 크게 거시 건전성과 미시 건전성으로 나뉜다. 거시 건전성 감독이란 금융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작동하도록 관리하는 것을 가리킨다.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등 금융시장이나 산업 전체가 마비되는 것을 방지하자는 것이다. 미시 건전성 감독은 각 금융회사가 파산이나 지급 불능 등의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거시 건전성 감독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금융시스템의 위기는 경제 위기와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감독당국은 이런 기능을 어떻게 수행하고 있을까. 대형 은행을 감독하는 미국 중앙은행(Fed)은 평소에 대상 은행의 각종 자금과 거래 흐름을 주시한다. 자금이 특정 분야나 산업으로 지나치게 쏠리거나, 특이 거래가 발생하면 은행 경영진에 메시지를 보내고 주의를 촉구한다. 사실상 사전 컨설팅이다. 이 때문에 서비스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다.

한국 금감원 명칭에 서비스를 넣은 것은 바람직한 방향 설정이었다. 24년간 그럭저럭 노하우를 축적하긴 했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신용카드 사태, 저축은행 사태 등 감독 실패에 따른 위기가 툭하면 불거졌다.

금감원이 선진국 수준의 감독기관으로 발돋움하려면 뛰어난 금감원장이 나타나야 한다. 현재 금융시장과 산업의 건전성이 어떤 수준이고 향후 위험 요인은 뭐가 있는지 꿰고 있는 금감원장이 필요하다. 글로벌 사정도 잘 아는 그런 금감원장 말이다. 개별 금융회사의 불법 행위에 대한 처벌은 금감원장 역할로 따지면 작은 사안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윤석열 대통령이 이복현 전 서울북부지검 부장검사를 금감원장으로 발탁한 것에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다. 물론 이 원장이 경제학을 전공한 데다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갖고 있고 검찰에서 금융 관련 수사를 많이 했기 때문에 금융에 대해 상당히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 위기가 어떤 양태로 나타나고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준비가 돼 있을까.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과거 금감원장은 재무 관료 출신이면 충분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부족하다. 한국의 금융산업이 정부가 직접 통제하는 수준을 넘어선 데다 글로벌 연관성이 훨씬 커졌기 때문이다. 금융에 관한 공부량이 상당하고 감독당국(또는 통화당국), 금융회사, 국제기구 등을 두루 거친 권위자면 최선일 것이다. 다음엔 그런 인사가 임명되길 기대한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원장 스스로가 잘하는 수밖에 없다. 최고 권위자가 아니라고 인정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금감원 스태프, 금융사 임직원들, 정부와 한국은행 관계자들, 국내외 전문가들에게 끊임없이 자문하고 토론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건전성 감독을 제대로 해 나간다면 성공한 금감원장으로 남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