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8.6%에 달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이 새파랗게 질렸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지난달 초 정책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으나 물가가 진정되지 않자 조만간 ‘자이언트스텝(일시에 0.75%포인트 인상)’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CPI가 지난 3월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것 아니냐는 희망 섞인 관측은 사라지고 인플레이션 장기화에 경기 침체가 동반할 것이란 공포가 퍼졌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장기화 추세가 확인된 만큼 ‘경기’와 ‘물가 상승’ 사이에서 고민하는 우리 정책당국이 인플레이션 대응에 집중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최근의 물가 상승세가 국제 유가·곡물가격 급등과 공급망 충격 등 외부 요인에 기인하기 때문에 기준금리 인상은 효과가 없다는 주장도 있으나 그렇게만 볼 상황이 아니다. “물가 상승 압력이 전방위로 빠르게 확산하고 기대인플레이션도 상승세를 지속하는 상황에서는 물가안정을 도모하는 게 거시경제 안정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는 한국은행 인식에 좀 더 주목할 때다.

이런 판에도 경기 둔화 가능성을 우려해 물가 상승에 적기 대응을 하지 않는다면 1970년대와 같은 스태그플레이션 사태에 처할 수도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 진단처럼 금리 인상으로 단기적으로는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커질 수 있겠지만, 시기를 놓쳐 인플레이션이 더 확산하면 그 피해 또한 취약계층에 더 집중될 수 있다.

한계는 있겠지만, 정부도 가능한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해 물가 상승이 장기화하지 않도록 총력전에 나서야 한다. 인프라 투자 등 당장 시급하지 않은 사업 집행을 미루고,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자극할 수 있는 선심책도 피해야 한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은 경제 전체에 파장이 큰 만큼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심리를 차단하지 못하면 인플레이션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번질 위험이 크다. 구조개혁을 통해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을 다지는 게 근본 처방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노동·연금·공공개혁 등 개혁 과제에 속도를 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