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중고의류의 경제학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A씨는 스웨덴 브랜드 등산재킷을 온라인에서 샀다가 고민만 늘었다. 구매비용은 아낄 수 있었지만, 사이즈가 영 애매했다. 얼마 안 입고 옷장에 걸어두다 결국 중고 매물로 내놨다. 값을 약 3분의 1 할인했더니 구매한 사람으로부터 “고맙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워낙 ‘핫’한 브랜드인데, 옷 상태도 깔끔해 크게 만족한 것이다.

공유경제가 발전을 거듭하면서 중고의류 거래도 인기를 끌고 있다는 한경 보도(6월 6일자 A2면)다. 중고나라의 여성 의류 등록 비중이 2년 전 22%에서 45%로 커졌고, 지난달 번개장터에선 여성 의류가 디지털·가전 카테고리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고 한다. 인플레이션 여파로 옷값이 뛰는 데다, 자원 낭비를 꺼리는 젊은 세대의 친환경 소비 흐름이 확산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물론 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고가(高價) 브랜드는 중고라도 사 입고 싶어 하는 소비자 욕구가 읽힌다. 등산 모임이나 자전거 동호회 등에서 고가 브랜드 제품을 입지 않으면 뭔가 주눅이 드는 게 우리 소비문화다. 문제는 카디건 하나 사려고 해도 100만원을 호가하는 게 럭셔리 브랜드다.

그런데 마침 활성화한 당근마켓, 번개장터 등엔 괜찮은 상태의 중고품이 많게는 절반 가격에 나온다. 신동품(新同品·신품 수준의 중고품)이라 불리는 매물도 적지 않다. 해외직구 등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한 데 따른 2차 시장인 셈이다. 남이 입던 것이라도 상태만 좋다면 구매해볼까 마음이 끌리는 것이다. 콜렉티브, 리클 등 중고의류 전문 리(re)커머스 플랫폼까지 경쟁적으로 등장한 것도 거래 증가에 기여하고 있다.

재테크 수단으로까지 발전한 한정 판매 상품의 중고 거래도 활기다. 대학생 B씨는 국내 래퍼가 개발한 브랜드의 후드티 한정 판매에 신청했다가 운 좋게 당첨됐다. 구입가는 14만원인데, ‘미개봉 신상품’으로 개인 간 거래를 도와주는 리셀(재판매) 플랫폼을 통해 30만원대에 팔 수 있었다. 일반적 중고 거래와 양상은 다르지만, 리커머스에 사람들이 익숙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고 거래는 국내총생산(GDP)에 포함되지 않는다. 새로 생산된 상품이 시장에서 화폐로 거래될 때만 GDP에 집계된다. 그러나 리커머스 확대로 사회 전체의 후생이 늘어나는 것은 분명하다. 중고 거래가 GDP에 포함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