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최저임금 인상보다 기업투자가 먼저다
최저임금위원회가 2023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시작하면서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를 둘러싼 논의가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코로나 위기로 인한 경영 환경 악화와 유례없는 최근 물가상승률을 둘러싸고 적정 최저임금 인상률에 대한 경영계와 노동계 간 온도 차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과연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최저임금 인상률은 어느 정도일까?

전통적 경제 이론에 따르면 최저임금 인상은 필연적으로 고용을 줄인다. 특히 국내외 실증 연구에 의하면 고용 감소가 노동시장의 상대적 약자인 청년, 여성, 고령층 등에 집중된다. 하지만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카드 교수는 1993년 출간한 논문에서 최저임금 인상에도 패스트푸드 업체의 고용에 유의한 변화가 없었던 미국 뉴저지주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전통적 경제 이론이 담아내지 못한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를 시사했다.

필자는 이렇게 최저임금 인상의 고용 감소 영향과 카드 교수가 시사한 긍정적인 효과가 동시에 작동하는 모형을 이용해 2018년 최저임금 인상의 거시경제적 효과를 분석했다. 최근 SSCI(사회과학논문 인용색인) 등재 국제 학술지에 실린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8년 단행한 16.4%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한국의 총고용과 실질 국내총생산을 장기적으로 각각 3.5%와 1.0% 줄이는 영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실질 국내총생산을 감소시키지 않고 가능했던 최저임금 인상률은 5.5% 미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경제에 충격을 주지 않고 가능한 최저임금 인상률은 기업의 일자리 창출이 얼마나 용이한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일자리 창출 용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로 신규 채용의 구직탄력성을 살펴보자. 이 탄력성은 노동시장에서 구직자 혹은 실업자가 1% 늘어날 때 신규 채용이 몇 % 늘어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이 값이 높을수록 기업의 일자리 창출이 더 용이하게 이뤄져 실업이 취업으로 원활하게 연결된다.

국내 선행연구에서 이 탄력성을 추정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실업자가 1% 증가할 경우 신규 채용은 0.3% 안팎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는 이 탄력성 추정치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다. 이보다 높은 탄력성 수치인 0.4%를 이용하면 2018년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커져 장기적으로 총고용과 실질 국내총생산 감소 폭도 각각 3.0%와 0.8%로 줄어들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 선행연구에서 이 탄력성 추정치는 대체로 0.5~0.7%로 이들 국가에서는 구직자가 증가할 때 한국보다 더 많은 신규 채용이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한국의 기업 환경이 이런 국가들만큼 일자리 창출에 용이하다면 한국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최저임금 인상률도 훨씬 높아질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한계근로자의 고용은 감소하지만 이에 따라 평균 노동생산성이 상승하면 기업의 자본 투자가 증가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되는데 이렇게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는 과정이 용이할수록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커지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해소하고 기업 투자의 발목을 잡는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해 기업의 일자리 창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이 궁극적으로 근로자를 위하는 정책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코로나 위기에서 벗어나자마자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생산성이 낮은 근로자의 일자리를 이전보다 더 크게 줄일 수 있다. 한계근로자의 희생을 피할 수 없는 현재의 최저임금 인상률에 주목하기보다는 기업이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를 용이하게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 장기적으로 높은 최저임금 인상도 감당할 수 있는 토대를 다져나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