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코미디 같은 중기 적합업종
김치, 두부, 고추장, 조미김, 프레스 금형, LED(발광다이오드) 조명, 절연 전선, 서적·잡지 판매, 떡볶이·떡국 떡, 계란 도매…. 2011년 제도 도입 이후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지정된 업종과 대표 제품이다. 어제 동반성장위원회가 여기에 대리운전업을 추가했다.

당장 드는 의문은 앞으로 카카오나 티맵 대리운전을 부르는 게 불가능해지는지 여부다. 일단 동반성장위는 유선콜 시장에 한해 대리운전업을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했다. 앞으로 3년간 대기업의 유선콜 대리운전 시장 진출 자제, 기존 대기업의 사업 확대 자제를 권고했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이행을 명령할 수 있다. 벌칙(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 벌금)도 부과할 수 있어 사실상 ‘금지’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기존 대기업 사업자로 좁혀 보면 현금성 프로모션을 통한 홍보를 자제하라고 요청한 정도다. 카카오와 티맵은 모바일 앱 호출 외에 유선콜 서비스도 작년부터 시작했다. 이런 사업 확장이 어려워진다는 얘기일 뿐, 서비스가 중단되거나 퇴출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영세 대리운전 사업자들의 대응에 따라 추가 규제가 더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2012년 LED 조명의 적합업종 지정 이후 사업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LG이노텍에 비하면 규제 강도가 세지 않다는 반응이 벌써부터 나온다.

2조7000억원 규모의 대리운전 시장은 영세업체가 60% 이상 점하고 있다. 나머지를 카카오 등의 앱 호출이 넓히고 있다. 프로모션 홍보를 줄여도 앱 호출이 대세가 될 것이다. 영세업체가 중기 적합업종 규제만 믿고 사업을 지속해도 될지 판단하기 어려워졌다.

대기업으로부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도입한 중기 적합업종 제도는 약해져 가는 동반성장위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총 125개로 적용 업종 및 제품을 늘리며 여전한 위력을 뽐낸다. 규제받지 않는 외국 기업에 이득을 주고, 소비자 후생은 줄이며, 청년 창업엔 걸림돌이 돼 버린 중기 적합업종 제도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중기 적합업종에서 회사를 키워 중견기업이 됐는데, 공공조달시장 참여가 막혀 매출과 사세가 거꾸로 줄었다는 하소연도 많다. 더 이상 회사 규모를 키우지 않고 중기에 만족하는 ‘피터팬 증후군’ 확산이 우려된다. 코미디 같다. 엉터리 정책으로 피해 보는 무수한 사업자는 누가 보상하나.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