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TV 주최로 어제 열린 ‘2022 세계 경제·금융 컨퍼런스’는 세계적 석학의 분석을 통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새 국제 경제 질서를 조망할 좋은 기회였다. 유력한 노벨경제학상 후보로 꼽히는 배리 아이컨그린 UC버클리 교수는 ‘경제질서를 바꾸는 기술 혁신’ 기조연설에서 “기술 혁신을 생산성 혁신으로 이어지게 하는 조건을 빨리 만들어가는 것이 성장의 핵심”이라고 했다. 역사적으로 내연기관의 발명이 빛을 발한 것이 고속도로망 구축 이후였듯이, 각국의 기술 혁신도 인적 자본 등 혁신 인프라와 연결됐을 때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의 혁신론은 코로나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위기로 재편되고 있는 신국제경제 질서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는 국가 생존 전략의 화두를 재확인한 것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 산업계에서 혁신에 가장 성공한 분야는 반도체와 배터리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오늘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삼성전자 평택 공장부터 찾는 것도 대(對)중국 경제 안보 전선에서 삼성의 반도체 기술력을 그만큼 인정해서다. LG, SK, 삼성 등이 포진한 배터리산업 경쟁력도 최고 수준이다. 앞날을 내다보고 선제적으로 투자한 기업가정신의 결정판이다. 현대자동차가 전기차와 수소차 부문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시장을 넓혀갈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하지만 나머지 산업에선 미국 기업들과의 격차가 엄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의 분야에선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에 필적할 수가 없다. 인류의 새로운 미래가 걸려 있는 우주산업도 아마존 테슬라 등이 주도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여객기 한 대 만들 수 없는 우리 항공산업 수준을 떠올려보면 한숨이 나올 정도다. 코로나 시대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한국 바이오산업도 제자리걸음에 그치고 말았다. 화이자 모더나 등 선진 기업들과의 격차는 거의 좁혀지지 않았다. 한때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원자력 기술력은 문재인 정부의 ‘자살’에 가까운 정치적 결정으로 사방으로 흩어질 위기에 놓였다.

산업혁신은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산업 융·복합의 차원이 높아질수록, 기술이 첨단화할수록 국가적 역량이 뒷받침돼야 한다. 아이컨그린 교수가 의미한 대로 혁신은 단순히 기업의 R&D 역량 강화 수준이 아니라 사회 구성 원리, 제도·정책, 국민 의식 등 사회 전반에서 일어날 때 빛을 볼 수 있다. 미국과의 동맹이 경제 안보를 뛰어넘어 기술동맹으로 넘어가고 있는 시대에 발맞춰 한 단계 높은 기술 혁신으로 새로운 성장과 번영의 기틀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