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지속 가능한 원전'을 위한 필요조건
독일과 프랑스의 에너지 정책은 자주 비교된다. 전력의 75% 이상을 원전에 의존하던 프랑스가 마크롱 1기 정부에서 원전 비중을 획기적으로 줄이기로 했을 때, 독일 정부 원전 당국자의 입가에는 미소가 흘렀을 것이다. 독일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 원전을 폐쇄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한편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안정적으로 도입할 새로운 배관망을 건설하며 상호의존성을 강화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로 에너지 안보가 취약한 상태에 처하자 이번에는 프랑스가 옳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30년 동안 새로운 원전이 없었던 미국에서 조지아주의 보그틀(Vogtle) 대형 원전이 올해 말 가동될 예정이란 뉴스가 보도됐다. 안전성과 경제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소형모듈원전(SMR)이 수년 안으로 상업 가동까지 된다면 원전 시대가 다시 부활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원전 정책을 둘러싸고 사회적 갈등이 컸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보다는 단계적 원전 비중 감축의 에너지 전환이라고 설명했지만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책 전환의 진폭이 커서 더욱 논란이 거셌다. 이념에 치우친 나머지 과학과 기술을 소홀히 했다는 평가까지 받았고 현 정부는 무너진 원전 생태계를 복구하기 위해 새로운 원전을 건설하고 수출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비전을 내놨다.

과거에도 정부가 바뀔 때마다 우여곡절이 있었다. 민주화 과정에서 1988년 원전 국산화 사업이 ‘5공 비리’의 하나로 국정조사를 받았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원전 후보지들이 지정 철회되면서 기존 부지 외에는 원전을 짓지 않기로 했고, 노무현 정부 때는 원전 안전성에 대한 재검토로 상당 기간 원전 건설이 연기되는 일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 중저준위폐기물 처분장이 우여곡절 끝에 경주에 자리잡는 성과도 있었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중동에 한국형 원전을 수출하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원전을 확대하는 데는 해결해야 할 난제가 아직 많다. 우선, 우리는 원전을 건설하고 운영하는 데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지만, 연료를 만들 우라늄 농축,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등 소위 핵주기에서 기술개발 접근성이 핵 비확산 차원에서 제한돼 있다. 전력의 50% 이상을 원전에 의존하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원전 연료를 자체 조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도입 계약을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바꾼 사례가 최근 양국 간 전쟁 이유와 오버랩되기도 한다. 우리가 원전을 수출할 때 이런 핵주기 분야에서 기술 자립을 못한 것이 프랑스 일본 등 경쟁국과 비교할 때 약점이다. 확실한 에너지 안보 구축과 기술 자립이란 측면에서 다른 선진 원전 국가처럼 이에 대한 기술 접근이 가능해져야 할 것이다.

둘째, 사용후 핵연료 등 고준위폐기물을 영원히 안전하게 관리할 처분장 확보가 구체화돼야 한다. 지금까지 원전 건설과 달리 지역 주민의 반발과 사용후 핵연료에 대한 재처리 여부 등 정책의 불확실성으로 영구처분장 등 사후관리 정책이 계속 표류하고 있었다. 일각에서 집을 짓는 데 화장실이 없다는 비판까지 받는 실정이다.

셋째, 원전 지역과 전력 사용 지역을 잇는 송전선로 건설도 큰 난관이다. 새로운 원전을 건설해도 전력을 사용할 수도권까지 송전망을 건설하는 것이 경과지 주민들의 수용성을 고려할 때 쉽지 않았다. 원전 이용과 폐기 후 처리해야 할 세대 간 부담, 원전 지역과 수도권 간 혜택 차이 등을 단순히 합리적 비용 부담 관점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원전에 대해 여론조사를 하면 일반 국민의 70% 이상이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50% 이상이 안전을 우려한다고 한다. 이런 미묘한 정서를 풀어가려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정책 일관성과 원자력계의 세심한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