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시대 변화 못 읽은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은 지난해 일본 기업 사상 역대 2위 규모의 적자를 냈다고 지난 12일 발표했다. 재작년에는 사상 최대 규모의 흑자를 냈다. 2020년 4조9880억엔(약 49조4725억원)의 순이익을 올린 회사가 1년 만에 1조7080억엔의 순손실을 낸 것이다. 이익과 손실이 조(兆) 단위로 널뛴 것이 벌써 4년째다. 손정의 회장의 경영 전략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는 이유다.

소프트뱅크그룹은 2019년부터 기업의 수익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영업이익 대신 투자 대상 기업의 평가손익을 반영한 투자이익을 발표하고 있다. 일본 3대 통신회사이자 일본 최대 정보기술(IT) 기업의 모회사라는 점보다 투자 전문회사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널뛰기 반복하는 주가

그러다 보니 시장이 출렁이면 실적도 롤러코스터를 타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소프트뱅크그룹은 도요타자동차와 소니그룹에 이어 일본 시가총액 3위 기업이지만 단기자금이 꼬이기 쉬운 구조가 됐다. 작년 3월 1만635엔으로 1년 만에 두 배 치솟았던 주가가 현재 5000엔 안팎으로 1년 새 반토막 났다. 소프트뱅크그룹은 ‘일본의 GAFA(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 대항마’를 자처하지만 차이가 크다는 지적도 있다. GAFA는 스마트폰, 인터넷 쇼핑 등 실물 사업의 수익 기반이 공고한 반면 소프트뱅크그룹은 투자 대상 기업의 성장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어서다.

손 회장은 수익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의 성공 모델을 일본에 이식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하지만 법 규제와 국민성의 차이로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내세우는 전자결제 시스템 ‘페이페이’조차 여전히 적자다.

무엇보다 세계화의 막이 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소프트뱅크그룹의 미래를 어둡게 보는 투자가가 많다. 미·중 패권경쟁과 코로나19 확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경제권은 지역별 그룹으로 재편되는 블록화 경향이 뚜렷하다.

블록화는 손 회장이 구상하는 세계의 근간을 무너뜨린다. 그는 2017년과 2019년 비전펀드1, 2호를 각각 1000억달러(약 129조원) 규모로 조성했다. 세계의 유망 인공지능(AI) 관련 스타트업을 쓸어 담고, 한꺼번에 가치를 높이는 전략을 쓴다. 그 전제는 자금과 기술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세계화다.

업종 독점 전략도 위기

손 회장은 시대를 관통하는 기술의 변화를 읽는 능력으로 지금에 이르렀다. 컴퓨터의 시대를 예상하고 소프트웨어 도매상 소프트뱅크를 설립했다. 인터넷과 무선통신의 시대를 내다보고 야후재팬과 소프트뱅크(옛 보다폰)를 인수했다. 2017년 손 회장이 세계 최대 규모의 벤처캐피털 설립 계획을 발표했을 때 1000억달러 규모와 자금 조달 능력은 화제가 됐다.

그런 손 회장조차도 세계화의 수명은 읽지 못한 듯하다. 세계화의 조류에 의지해 사상 최대 규모 투자 선단을 띄운 건 손 회장뿐만이 아니다. 사모펀드(PEF) 운용사의 원조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는 각 대륙을 대표하는 초대형 자동차 부품회사를 사 모으고 있다. 다른 글로벌 PEF도 비슷한 전략을 펴고 있다.

업종별로 세계 대표 기업을 싹쓸이하는 글로벌 업종 독점 전략이다. 이 전략의 전제 역시 재화와 용역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세계화다. 세계화가 정말 이대로 막을 내린다면 5대양 6대주를 호령하던 글로벌 투자 선단의 시대도 저물 수밖에 없다. 올해 손 회장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